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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도서 - 하나님을 알자!/이런건 만화책이지~

요한복음 뒷조사 / 김민석 / 새물결플러스 #1

by 현명소명아빠 2019. 12. 18.

Main category: 신앙도서 - 하나님을 알자!

  • Subcategory: 이런 건 만화책이지~
  • 추천 대상:
    • 복음서 중 가장 마지막에 쓰인 요한복음의 역사성에 대한 관심이 있는 분
    • 요한복음에 비춰 현대 시대의 교회의 모습에 대한 새로운 기준점을 가지고 싶은 분

이 책은 이 카테고리에서 여러 차례 다룬 바 있는 김민석 작가님의 책입니다. 이야기는 SNS를 통해 기독교 신앙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콘텐츠로 유명한 사페레와 교회 간에 요한복음에 대한 이슈를 두고 소송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신학자인 외할아버지를 닮아 신학적 지식이 뛰어난 성경이가 목사님의 사주(?)를 받고 사페레의 출판사로 잠입하여 재판을 유리한 쪽으로 이끌도록 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을 주된 줄거리로 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이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다는 이유로 불법을 종용하는 목사, 기독교를 공격하는 입장이지만 오히려 성경이의 신학적 의견을 가장 공감하며 귀 기울여주는 사페레,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떤 입장에 서야 할지 고민하는 성경이의 갈등 사이사이에 요한복음에 대한 역사성, 대상 독자, 역사적 배경에 대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사실, 장점이자 단점은 이야기 자체가 너무 재미있고 흥미롭게 진행되고 있어 자칫 지식의 전달이 약해질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만, 반대로 말하자면 어려운 신학적 내용을 빠른 전개의 이야기 속에 함께 전달함으로써 지식의 전달이 아주 잘 되는 것 또한 눈여겨볼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당시 기독교를 믿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공동체에서 겪은 일들과 사페레가 교회에서 겪은 일들이 서로 유사성을 갖고 비교되며 그려지고 있는 부분이 많이 와 닿았습니다.

 

이 책에서 던지는 몇가지 질문과 그것에 대한 답변을 살펴보겠습니다.

 

Q1 : 요한복음은 종교적 목적으로 창작된 문헌이며 따라서 역사적 가치는 없다고 할 수 있는가?

A1 : 요한복음에 대한 논의 중 가장 먼저 제기되는 문제는 과연 요한복음의 저자가 사도 요한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초대 기독교 교부들은 요한복음의 저자를 사도 요한으로 지칭하고 있지만, 1) 헬라어로 쓰인 부분, 2) 요한복음의 서론과 나머지 장들의 문체가 확연히 서로 다른 점, 3) 요한복음 3장에서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는 예수가 3장 22절에서는 유대 땅으로 갔다고 표현하는 문맥이 맞지 않는 표현 등의 이유로 의문점이 제기됩니다.

 

이에 대해 본문에서 기술되는 답변은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요한복음은 '목격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예수님의 옆구리를 군인이 찔러서 피와 물이 나왔다는 장면을 두고 요한복음은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라고 19:35에서 적고 있으며 19:26에서는 그 보고 증언한 자에 대해 별도로 기술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사랑하시는 제자'인데요. 그 사랑하시는 제자가 가상의 제자의 모델로만 가정한다면 그 사랑하시는 제자가 기록했다고 되어 있는 요한복음 자체에 대한 정당성이 훼손됩니다. 그 당시 성도들 사이에서는 누구나 '그 사랑하시는 제자'라고만 해도 알 수 있는 인물이어야 했다는 말이 됩니다.

 

단, 변화산 사건이 요한복음에서만 빠져있는점과 요한복음에서만 열두 제자의 명단이 나오지 않고, 또 그들의 역할에 대한 기술 또한 미미한 점을 들어 열두 제자 중 한 명이 아니었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그런 주장을 바탕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요한 2,3서의 저자인 '장로'라 불리는 인물인데요. 그 사랑하시는 제자와 마찬가지로 당시 성도들이 '장로'라는 호칭만으로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인물이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2세기 초 파피아스 주교의 글에 사도 요한과 장로 요한이 구별되는 인물이라고 기술되는 기록이 있습니다. 2세기 초 기준으로 이미 다른 제자들은 말했다, 그리고 장로 요한은 말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처럼 요한복음의 저자로서 사도 요한보다는 장로 요한의 가능성을 높게 볼 수 있지만, 요한복음 자체가 한 사람 만으로 쓰여지지 않았다는 주장 또한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그 증거로 요한복음의 실질적 결론은 20장 끝에 이미 나오지만 21장의 마지막에 비슷한 결론이 다시 반복되는 것을 보면 21장은 나중에 추가된 장이란 결론이 도출됩니다. 이에 대해선 신학자 간에 이견이 분명히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제자가 장로 요한이며 그가 혼자 기술하였다고 보는 관점과 요한복음이 몇 단계에 걸쳐져 완성되었다고 보는 관점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가 목격자로 요한복음 증언 내용의 자료를 제공했고, 요한복음의 저자가 그 자료에 기초해서 요한복음을 기술하였고, 편집자에 의해 요한복음 최종 형태로 완성되었다고 보는 겁니다. 이에 대해 요한복음 후반부에 요한복음 자체에 대한 신빙성을 '사랑하시는 제자'가 보증한다는 사실을 재차 기술함으로써 보여주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요21:24 /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요 19:35)

 

 

Q2 : 요한복음이 기술된 목적?

A2 : 이 책에서 요한복음의 기술 목적이 역사책이 아닌 '신학'임을 적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단순히 본 것을 전달하는 입장을 넘어 예수님이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복음의 본질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신학적 기술을 누구를 위해 적고 있냐 또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것을 보기 위해선 요한복음이 기술될 당시 1) 요한 공동체가 처했던 상황, 그리고 2) 요한복음이 대상으로 한 당시의 독자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입니다. 

 

먼저 요한 공동체가 처했던 상황을 한마디로 적어 보자면 "너는 더 이상 유대인이 아니야"입니다. 초대 기독교인은 대다수가 유대인이었으며 그들은 여전히 회당에도 나가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원후 70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이후 유대교는 얌니아라는 곳에서 바리새파를 중심으로 재정비됩니다. 그리고 그들에 의해 초대 기독교 유대인들은 출교까지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사람들이 너희를 출교 할 뿐 아니라.." 요 16:2)

 

회당은 지금의 교회처럼 종교적인 공간만이 아닌 지역 사회 공동체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회당에서 출교 된다는 건 지역사회에서 배제와 차별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한다는 뜻입니다. 유대교는 로마한테 존중받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유대인으로 간주되면 기독교인이라 해도 큰 문제가 없었지만, 유대교에서 출교 됨으로써 더 이상 유대인이 되지 못한 초대 기독 유대인들은 황제 숭배의 대상으로 되어 버리기 때문에 탄압의 대상이 되어 버립니다.

 

이어서 요한복음이 대상으로 한 당시의 독자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 부분인데요. 요한복음의 강조점을 살펴보면서 살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 요한복음은 '개인'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개개인의 인권을 강조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는 사회이지만, 당시 고대 사회는 개개인보다는 집단주의가 더 강조되는 시기였음을 감안할 때 그 강조점의 독특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유난히 '개인'과 예수의 관계에 대한 말씀들이 많은데요. 지칭 대상들이 대부분 단수로 표현되어 있으며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보단 '영생'이란 표현이 더 자주 쓰입니다. 다른 공관 복음서에서 구원의 우주적 차원을 강조하는 반면에 요한복음에서는 예수 믿는 일이 각 개인의 결단이라는 것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와 개인의 일대일 관계는 '계명'을 지키는 관계이며, 그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로 수렴되고 있습니다.

("..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 1:10, 12)

사회로부터 배제받고 고통 가운데 있는 그 공동체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서로를 포기하지 말고 한 명 한 명이 선한 목자의 본을 따라 서로를 소중히 대하는 공동체를 이루라는 메시지인 것이었지요. 

 

요한복음의 두 번째 강조점은 '하나 된 공동체'입니다.

"...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요 17:21에서 처럼 예수와 하나님 아버지가 하나인 것처럼, 신자들도 하나가 되길 예수님께서 기도하셨습니다. 신자들의 '서로 사랑'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하나 됨이 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얘기되고 있는데요. 요한복음의 예수는 신자들이 서로 사랑하고 하나 되는 것을 통해서 세상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기도하신 다는 것이죠. 사랑한다는 말로 세상이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자들이 얼마나 서로를 진심으로 대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지에 따라 세상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될 거라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의 많은 교회가 그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함을 통해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과 관계를 드러내기보단 부흥이라는 명목으로 교회의 양적 성장과 개인의 훌륭한 '신앙생활' 유지를 위한 지폐적인 욕망이 비치고 있을 뿐이라는 안타까움 또한 기술되고 있는데요. 그런 안타까움을 자주 느끼는 저도 더더욱 깊은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요한복음에서의 사랑으로 하나 된 공동체의 모습을 현대 교회에선 이룰 수 없는 것일까요?

 

이어진 이야기는 #2에서 이어서 기술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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