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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도서 - 하나님을 알자!/이런건 만화책이지~

누가복음 뒷조사 / 김영화 / 새물결플러스

by 현명소명아빠 2019. 12. 14.

Main category: 신앙도서 - 하나님을 알자!

  • Subcategory: 이런 건 만화책이지~
  • 추천 대상:
    • 복음서 특히 누가복음 속에서 나타난 여성관이 궁금하신 분
    • 교회 안에서 젠더 차별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

이 책은 뒷조사 시리즈 중에서 다른 책들과는 약간 궤를 달리합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뒷조사는 복음서 자체의 역사성과 사실성 그리고 집필 대상자 등의 정보 전달이 주를 이루고 있다면, 이 책은 세 가지 주제 키워드(예루살렘, 여성, 새 예루살렘)를 가지고 한국 교회에서의 여성 목회자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저는 세 가지 키워드 중 '여성'에 중점을 두고 읽었기에 그 부분에 대해 중점적으로 후기를 기술해 보겠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장로교회에서도 여성 목회자 안수, 여성 장로 안수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의 교단입니다. 그것이 옳고 그르다를 논하기 위함은 아니구요. 그만큼 교회 안에서 젠더 차이에 의한 차별은 여전히 크게 남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후기 및 제 의견을 남기려 합니다.

 

이 글은 한 여성목사님께서 담임 목사님의 결정에 따라 오랫동안 몸담고 성도들을 양육해온 여성 목사님 대신 막 목사 안수를 받은 남자 목사님을 부목사로 임명하고, 그 여성 목사님을 기관 목회자로 보내버리는 이야기를 딸의 입장에서 하나하나 알아가는 장면을 주된 이야기의 흐름으로 가져가고 있습니다.

 

일단, 저자가 누가복음을 사용하여 교회 안에서 여성의 위치와 여성들이 당연스레(!) 받고 있는 차별에 대해 기술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근거가 있습니다.

 

현대 교회 안에서 여성의 차별을 이야기 하기 전에 누가복음이 기술된 주후 1세기 무렵의 당시 여성의 인권에 대해 먼저 이야기 안 할 수 없을 거 같은데요. 1세기 랍비인 엘리에제르는 "토라(성서)를 여자에게 맡기느니 차라리 불태워 버리는 게 낫다.", "딸에게 토라를 가르치는 행위는 그녀에게 음탕한 것을 가르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라고 말했으며, 탈무드에도 "자신의 아내와 자녀에게 은혜의 말 혹은 축복 기도를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여성을 위한 공간이 따로 존재 했고 그 장소는 남자가 자리한 곳에서 다섯 계단 낮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유대인에게 신성한 장소이자, 자녀의 최고의 성인식 장소인 통곡의 벽에 가보면 남자들만 통곡의 벽 앞으로 키파를 쓰고 들어갈 수 있고, 여성들은 밖에서 축하의 사탕을 던져주는 정도만 하는 것을 보면 당시의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5년 8월 이스라엘 출장 때 직접 찍은 '통곡의 벽' 사진입니다. 우측 끝에 보이는 갈색의 벽같은 부분 너머가 여성이 와서 사탕을 던지며 축하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마치 그당시 유대 문화를 그대로 계승이라도 하듯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것은 창조 질서이다."

"생리는 부정하다"

"여성은 감정적이라 지도자에 어울리지 않는다."

"여성의 목소리는 설교에 적합하지 않다."

"여성 목사(안수) 문제는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근간에 속한 문제이다. 성경은 여성을 목사로 세우는 것을 금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므로, 우리는 여성 목사(안수)를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

등의 교회 안에서 많은 여성 목회자 혹은 여성 리더에 대해 비하하는 발언이 아직도 힘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마치 여성이 남성의 자리를 뺏는 것과 같은 모양새로 몰아가서는 절대로 안 될 것입니다. 남성의 관점에서만 보던 것을 여성의 관점으로도 보는 것이 페미니즘인 것처럼, 남성에겐 당연하고 여성에겐 불가하다는 것이 차별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안에서 흔히 쓰는 표현이나 자주 부르는 찬양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형제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의 형상 아름다워라. 자매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의 형상 아름다워라."

 

그 표현 어디에서도 하나님께서 성별로 인해 차별적으로 사랑하시지 않으시거나 특정 성별 속에서만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고 표현되지 않음에도 우리는 동시에 교회 안에서 차별을 당연시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또한 경계합니다. 저의 글이나 이런 책이 교회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전락되지 않기를 말이죠. 

저자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저도 이런 글을 적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무의식적으로 당연히 여기며 하는 행동을 의식적으로 바꾸는 것"을 위해서입니다.

 

이제껏 신경 쓰지 않았던 장면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고쳐 나가려고 시작하는 것. 그것을 위해서입니다.

 

이야기가 많이 돌아온 느낌이라 죄송합니다. 당시에도 심했던 젠더 차별에 대해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는 특히나 예수님께서 얼마나 여성에 대해서 당시와 다른 인식을 가지셨고 그렇게 대하셨는지를 적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이 여성에 대해 더 특별히 주목하고 기술하고자 했다는 증거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누가복음에서 여성과 관련된 구절은 모두 220개 정도이다
    1. 나머지 복음서 비율 : 마태복음 180개(누가복음 대비 82%) / 요한복음 119개(54%) / 마가복음 114개(52%)
    2. 누가복음은 총 24장 기준 1,151절/25,640 단어 사용 / 마태복음 총 28장 기준 1,0
  2. 누가복음에서 여성에 대해 기록된 구문 42개
    1. 3/42 : 사복음서 공통 기록
    2. 9/42 : 누가, 마태, 마가복음 공통 기록
    3. 5/42 : 누가, 마태복음 공통
    4. 2/42 : 누가, 마가복음 공통
    5. 23/42 : 누가복음에만 기술된 특수 자료
  3. 누가복음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찬가 포함
  4. 누가복음에 여성 제자에 대한 내용 기술됨
    1. 누가복음 8:1-3 / 그 뒤에 예수께서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그 기쁜 소식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가 예수와 동행하였다. 그리고 그 밖에 여러 다른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의 일행을 섬겼다.
      1. 떠돌아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시던 예수님의 사역 특성상 여성이 남성과 함께 여행하고 유숙하는 일은 당시 문화로 불가능 / 오직 제자만 할 수 있던 일
      2. 자기들의 재산으로 섬겼던 능동적 자세의 여성 제자들의 모습
    2. 누가복음 10:39 / 이 여자에게 마리아라고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1. 바울이 가말리엘 문하임을 표현하는 것과 같은 표현으로 누가는 마리아를 표현함
  5. 예수님의 비유에서 남/녀 모두에 대한 비유가 쌍으로 표현됨
    1. 누가복음에서만 남/여 짝을 이루는 구절이 27개
      1. 다른 복음서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비유법 / 다른 복음서 기자들에게도 예수님의 이 평등한 자세가 공유되었음을 알 수 있음
    2. 누가복음 5:36-39 / 새 옷에서 한 조각을 떼어내서, 낡은 옷에다가 대가 깁는 사람은 없다. /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다가 넣는 사람은 없다.
      1. 당시 옷을 깁는 일은 여성, 포도주 제조는 남성의 일이었다.
    3. 두 렙돈 과부에 대한 칭찬

 

그리고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또 한 명의 여인과 예수님에 대한 사건을 자세히 기술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바로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바리새인인 시몬은 '랍비'인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떠보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던 시몬은 랍비를 초대하는 영광을 가졌음에도 '손과 발을 씻을 물'도, '머리에 부을 향유'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동시에 이미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다시 예수님을 만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길을 찾고 있던 오늘의 주인공인 그 여인은 화가 났습니다. 자신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에게 마땅히 제공되어야 할 '환영 의례'가 없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지혜로운 여인은 감정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이 상황을 오히려 자신이 예수님께 직접 환영 의례를 드릴 기회로 삼습니다. 

 

이 여인은 발 씻을 물 대신 눈물로, 당시 문화로선 너무나 수치스러운 머리카락을 드러내어 눈물과 함께 예수님의 발을 씻어 드립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먼지투성이가 되어버린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붓습니다.

 

바리새인 시몬도 놀랐지만 가만히 예수님의 반응을 지켜봅니다. '당신이 선지자라면 이 여자가 어떤 죄인인 줄 알겠지? 그거 모르면 당신 가짜야!'라는 마음이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예수님께선 여인의 행동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칭찬하심과 동시에 이 여인의 죄가 이미 용서받았음을 확증하셨는데요. 그때 사용된 비유가 바로 빚을 탕감받은 자들에 대한 비유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당시 문화 속에서 천시하고 사람 취급하지 않던 여인들을 존중하셨고, 인정하셨습니다. 한 명의 동등한 사람이자 제자로서 말이죠. 그리고 그 가르침을 아직 유지하고 간직하던 초대교회에서는 브리스길라가 아볼로에게 하나님의 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여성이 공동체의 지도자 역할을 잘 수행하던 공동체였지요.

 

이렇게까지 함께 살펴보았음에도.. "그래도 여자가..."라고 말하고 싶은 분께 마지막으로 권면드립니다.

 

예배시간에 주위를 한 번 둘러보시라고.. 남자가 많은지 여자가 많은지 말이죠. 공예배, 새벽기도, 수요, 금요 기도회... 어떤 시간대를 보더라도 여자가 많은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대부분 공예배의 대표기도는 남성만이 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고들 많이 들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살기로 다짐한 제자의 삶을 사는 성도라면.. 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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