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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도서 - 하나님을 알자!/과학 vs 신앙?

창세기 1장과 고대 근동 우주론 / 존 H. 월튼 / 새물결플러스 #1

by 현명소명아빠 2019. 11. 24.

Main category: 신앙도서 - 하나님을 알자!

  • Subcategory: 과학 vs 신앙?
  • 추천 대상:
    • 창세기 1장을 어떤 자세로 읽어야 할지 궁금하신 분
    • 창세기 1장과 고대 근동 창세관의 비교에 대해 궁금하신 분

이 책은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면서 일찍부터 제목은 계속 봐왔지만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 계속 미뤄두고 있다가 이번에 큰맘 먹고 시작해 봅니다.

 

이제까지 다뤄온 책들과 차별점을 찾자면 이제까지 책들은 창세기1장에서 나타난 천지창조와 과학과의 상관관계에 대해 신학과 과학을 각각 어떤 시선에서 바라봐야 할지에 다뤄왔다면, 이 책은 창세기가 쓰인 고대 근동의 대표적인 고대문명인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의 고대 근동 우주론을 상호 비교하며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를 어떻게 읽을지를 다룬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왜 고대 근동 우주론을 상호 비교해가며 창세기 1장의 창조론을 연구해야 할까요?

이것에 대해 본문에선 이렇게 배경을 적고 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창세기 1장 이야기는 성서적 신앙을 받아들인 자들과 이들을 통해 서구 세계에 속한 자들이 믿는 우주론의 기초 역할을 담당했다. 이런 기초는 자연 너머에 어떤 힘이 존재한다는 초자연 개념을 의문시했던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먼저 철학계의 도전을 받았다. 그 결과 "자연"과 "초자연"을 나누는 이분법이 확립되었고, 사람들은 우주론을 한층 자연주의적인 용어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창세기 1장 위에 세워진 이 기초는 찰스 다윈의 연구로 진화 생물학이 꽃을 피우게 되면서 과학계의 도전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고학자들이 창세기 1장의 문학적인 맥락을 제공했던 고대 신화 이야기들을 발견하면서 신학계의 도전을 받기에 이르렀다. 
..(중략)..

이처럼 양자의 조화를 꾀하는 접근 방식은 창세기 1장을 현대 우주론으로 읽기를 원한다. 다른 이들은 창세기 1장이 단지 문학적이거나 신학적인 역할만을 수행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창세기 1장을 사실상 우주론에 관한 논의에서 배제한다.
..(중략)..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이 창세기 1장을 고대 전승의공통 줄기로부터 빌려온 또 하나의 신화적 우주론으로 여긴다. 
..(중략)..

이 책에서 나는 창세기 1장을 고대 우주론의 표본으로 탐구하면서 그 자체로 이해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본문 p23-24)

 

여기까지 읽는데도 한참의 이해의 시간을 필요로 했고, 여러 번 해당 구절을 반복해서 읽어야 했습니다. 창세기 1장이 받은 철학적 도전으로 이해 모든 세계관이 하나님의 통치 세계로 보는 관점에서 자연과 초자연으로 구분되어 마치 자연은 과학의 논리로, 초자연 영역만 하나님의 영역으로 간주되었지요. 그리고 과학적 도전으로 인해 자연의 세계는 완전히 과학적 증명이 가능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별도의 세계로 취급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고학적 도전으로 인해 고대 우주론과 창조론의 차 용적 모습으로 간주되어 마치 고대 근동 세계에 전해지던 하나의 설화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이중 철학과 과학의 도전에 대해서는 이 카테고리의 다른 책들에서 이미 충분히 다뤄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대 근동의 우주론과 창조론의 차용이 아닌가에 대한 부분을 교차 연구를 통해 다룬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이정도 내요이면 아마도 #1 ~ #10 정도까지로 연재해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너무나 전문적인 내용들이 대부분이라 그 부분을 굳이 다뤄야 할까 싶어 이번 책 후기에서는 배제합니다. (아마 2편 정도 연재되지 않을까 합니다)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중에서 1-3장까지는 생략합니다. 그리고 4장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에 대한 직접적인 기술 내용 부분과 5장 결론을 살짝다루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p271부터 시작되는 각 날들의 창조에 대한 저자의 연구 결과를 하나하나 알아 보겠습니다.

 

1) 1-3일(창세기 1:3-13)

 

고대 세계에서 빛은 어둠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경험하는 현상이었을 뿐, 현대 물리학이 말하듯 파장/입자의 특성을 띤 물체가 아니었다. 고대인에게 어둠은 빛이 창조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창조되었다. 모든 현상이 우주의 질서에 속한 일부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째 날의 이야기를 자세히 읽어보면, 창세기 1장이 물질보다는 기능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추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두 드러진 주장은 먼저 5절에 있는 첫째 날의 결론에서 쉽게 드러날 것이다.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고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고 부르셨다."

여기서 핵심적인 관찰은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것이다. 하나님이 붙이신 그 이름들은 첫째 날에 창조된 것들이 사물이 아니며, 심지어 현상도 아니고 기간임을 의미한다. "낮"과 "밤"이라는 이름은 시간의 길이를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하나님은 빛[의 기간]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둠[의 기간]을 '밤'이라 칭하셨다. 
..(중략)..

5절에서처럼 빛과 어둠은 사물이 아니라 일정한 기간을 가리킨다. 사물은 이런 방식으로 나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 누구도 어둠을 사물로 생각하지 않는다. 빛과 어둠은 서로 나뉠 수 있도록 결합될 수 있는 사물이 아니다. 
..(중략)..

하나님은 어떻게 빛의 기간과 어둠의 기간을 나누신 것일까? 창조 이야기가 시잘될 때는 어둠밖에 없었고(2절), 따라서 어둠의 기간도 없었다. 그러나 3절에 의하면,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셨다. 빛이라는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어둠을 중단시킬 빛의 기간을 창조하셨다는 말이다. 
..(중략)..

이렇게 나누어진 둘은 "낮"과 "밤"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로써 낮과 밤이 첫째 날에 창조되었다. 아니면 낮과 밤의 교대에 주목한다면, 시간이 창조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첫째 날에 하나님은 우리의 세계와 우리의 존재에 질서를 부여하는 위대한 기능 중 첫 번째인 시간을 창조하셨다. (본문 p271-272)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하나님의 첫번째 창조물은 시간이었다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대로라면 이미 빛이 만들어진 그 후에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시는 것을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중복되는 개념이 아닌, 첫째 날의 빛의 창조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어둠의 기간과 빛의 기간을 설정 하사 "시간"을 창조하셨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고대 근동의 다른 세계관에서 시간과 창조에 대한 시각이 유사한 것을 또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증거로 채택합니다.

 

둘째날은 첫째 날의 시간의 창조에 이어 "공간"의 창조를 묘사하고 있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궁창(라키아)의 배치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요, 위에 있는 우주적 물들을 아래에 있는 우주적 물들로부터 나누는 라키아의 배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설명을 아래와 같이 적고 있습니다.

"쉐하킴"과 함께 작용해 "라키아"가 위의 물들을 아래의 물들로부터 나눈다는 사실은 이를 고대 세계의 우주 발생론들로부터 알려진 우주 지리학 의한 특징으로 보게 해 준다. 고대 세계에서는 견고한 창공을 구성하는 물질을 표현할 때 다양한 이미지를 사용한다. 이스라엘인들도 이와 비슷하게 다양한 그림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고대 근동 전역에 걸쳐 "라키아"는 견고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것이 위쪽의 우주적 물들을 지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질 자체는 관련성이 없다. (본문 p282-283)

물을 지탱했던 이 장벽을 물질로 대상화하기보다는 그것이 수행하는 중요한 두 가지 우주적 기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라키아"의 첫 번째 역할은 이간이 살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하는 데 있었다. 아울러 창ㅅ헤기 1장의 맥락에 더 적합한 두 번째 기능은 비나 눈을 통제할 장치가 되는 데 있었다. 비와 강우량을 조절하는 수단 말이다. 우주 내 질서는 비나 눈의 적절한 양에 의존했다. 너무 적으면 기근이 초래되었고, 너무 많으면 파괴적인 홍수가 발생했다. 우주적 물든 끊임없는 위협으로 다가왔고 그래서 "라키아"가 우주적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창조되었다.
..(중략)

창세기 1장은 기존 물질계의 관측 가능한 기능들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우주 지리학을 사용한다. 이 경우에는 그들이 보기에 하늘의 구조에 의해 통제되는 날씨의 기능이 그러할 것이다.
(본문 p283-285)

 

셋째날의 제목을 저자는 "비옥함의 창조"로 적고 있습니다.

셋째 날은 나누는 행위보다는 모으는 행위로 시작하지만, 마른땅이 나타나게 하려고 물들을 모으는 일이 먼저 이루어진다. 
..(중략)..

둘째 날과 마찬가지로 셋째 날도 공간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우주적 공간보다는 지상 공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중략)..

또한 학자들은 "창조하다"를 뜻하는 동사 중 어느 것도 셋째 날 내러티브에서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중략)..

창조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활동이 아니라, 질서를 부여하는 행동을 뜻한다. 셋째 날에 하나님은 비옥함과 풍요와 초목과 농업 등의 기초를 창조하셨다. 요컨대 그분은 땅을 식량의 근원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을 준비하셨다. (본문 p285-286)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의 하나님께서 하신 창조에 대해 각각 "시간", "날씨", "식량 생산"으로 결론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에서는 4-6일(창세기 1:14-31)을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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