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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도서 - 하나님을 알자!/과학 vs 신앙?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 우종학 / 새물결플러스 #3

by 현명소명아빠 2019. 11. 6.

Main category: 신앙도서 - 하나님을 알자!

  • Subcategory: 과학 vs 신앙?
  • 추천 대상:
    • 머리론 진화론, 마음으론 신앙을 두고 갈등하는 분들
    • '창조과학', '젊은 지구론'이론에 신앙마저 흔들리는 것에 힘들어하는 분들
    • 신학과 과학이 대립만이 유일한 길인가에 의문을 가지는 분들
    • 친구와 과학 논쟁 중 진화론을 주장한 친구에게 무참히 깨진 우리 아들?!

#3에서는 3부 과학주의 무신론의 도전을 제목으로 무신론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과학을 등에 업고 20세기 말에 새롭게 등장한 무신론의 흐름을 "새로운 무신론" 혹은 "신 무신론"이라고 부른다. 기존의 무신론에 비해서 새로운 무신론은 과학에 의존하는 특징을 갖고 있으며 과학을 모든 진리의 척도로 삼는 과학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새로운 무신론은 그 내용상 "과학주의 무신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 (본문 p133)

 

이 단원에서 저자는 과학주의 무신론의 내용을 하나하나 다루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과학주의 무신론의 가장 대표적 인물인 리처드 도킨스의 책을 읽은 후 신앙을 잃거나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실제로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에 반대되는 교회 내에서의 주장이 비과학적이거나 비논리적인 일부의 젊은 지구를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마치 교회 내의 목소리의 전부인 양 인식되어 더 실망하며 떠나게 부추기는 것 또한 무시할 순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내에서 이런 분야의 질문을 하는 이가 있을 때 교회 내의 일관된 반응 또한 큰 문제라 할 수 있는데요.

"너 시험들었어"

"더 열심히 기도해"

차라리 잘 모른다고 솔직히 인정하고 같이 공부해 보는 기회로 삼으면 참 좋겠지만, 자연스러운 그런 의심과 질문을 정죄하는 태도로 대한다면 그들은 더더욱 교회 내에서 자신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베드로전서 3:15)

 

본격적으로 과학주의 무신론의 주장과 그 주장의 한계를 살펴보고자 하는데요.

 

그 첫 번째는 "물질의 기원"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생물을 구성하는 원소 중 가장 중요한 원소 중 하나는 탄소입니다. 그리고 이 탄소는 46억 년 전 지구가 만들어질 당시 이미 존재했다고 과학은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탄소는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생겼다가 사라진 수많은 별들의 내부에서 만들어졌고, 그 별이 죽음을 맞이하여 초신성으로 폭발하면 그동안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진 원소들이 우주공간으로 퍼져 나간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이 탄소를 만드는 핵융합 반응의 재료가 되는 수소나 헬륨은 어디서 기원했는가를 질문한다면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수소나 헬륨 원자는 소위 "원자의 시대"로 불리는 시대에 양성자, 중성자, 그리고 전자의 형태로 존재하던 물질들이 결합하면서 생겨난 것으로 봅니다. 그러면 양성자, 중성자, 그리고 전자는 어디서 기원한 것일까요?

 

이런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질문"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과학이 대답을 줄 수 없는 시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소위 빅뱅의 순간인데요. 현대 과학은 아직도 어떻게 그 막대한 에너지가 기원했는지를 알려주지 못합니다. 그 '0'의 순간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요. 이론은 여러 가지 있지만, 그것을 입중 할 수 있는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무에서 유가 창조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과학만을 주장의 근거로 삼을 때 겪는 한계라 보입니다.

과학주의적 무신론은 인간은 이런 원소 단위로부터 우연을 반복하며 진화를 통해 만들어졌다고 말하지만, 이 주장은 그 물질은 어디서 오는가 하는 질문에 빛을 잃습니다.

 

 

과학주의 무신론은 과학을 그 중심의 근거로 삼는 주장인 만큼 철저히 증거주의에 입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 또한 우리의 삶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데요.

"사랑", "정의", "생명의 존엄성", "도덕"과 같이 분명히 실제 하고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개념들이 있지만 이런 개념들에 대해 과학적 증거를 대긴 어려워 보입니다. 그리고 과학적 증거를 대기 어렵다고 해서 그 개념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더더욱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 또한 과학적 증거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하나님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서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의 경험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과학적 증거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이 신을 믿는 이유는 신의 존재가 과학적으로 증명되기 때문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증거보다는 경험에 근거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신과 신앙을 경험한다.
회회
호 첫째는 2천 년 전에 팔레스타인 땅에 살았던 예수라는 분의 삶과의 만남이다. 복음서를 통해 그려진 그 삶의 기록과 만나는 경험은 우리를 기독교 신앙으로 인도한다. 신의 자리를 버리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와서 자신을 죽기까지 내어준 그분의 삶에 대한 기록은 우리가 가진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이다.

왕이 되기보다 종이 되어 한 알의 밀알처럼 썩어져 죽은 그의 삶을 대할 때마다 우리는 충격을 받는다. 그 경험은 바로 우리에게 믿음의 도약을 가져온다.

기독교 신앙은 일차적으로 성경에 기초한다. 성경은 스스로 존재하는 신을 계시하고 그 신이 창조주임을 선포한다. 기독교 신앙을 갖는다는 말은 성경에 계시된 신을 믿는다는 뜻이다. 성경이 전해주는 구름같이 허다한 믿음의 증인들이 살아간 삶의 내러티브를 자신의 삶으로 경험하며 그리스도인들은 싱앙의 여정을 걷는다.

둘째는 2천 년의 교회사를 통해 내려오는 신앙의 고백과 내가 속한 교회 공동체가 경험한 사랑과 은혜는 우리의 삶을 끌어주는 하나의 지도가 된다.

셋째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삶에서 인격적인 하나님을 경험한다. 우리 삶은 다 이래 할 수 없는 수많은 경험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경험은 종종 목숨을 내어놓는 헌신을 끌어내고 우리 삶을 더할 수 없이 가치 있는 삶으로 승화시키기도 한다. 세상이 추구하는 이기성과 달리 거기에는 희생과 사랑으로 드러나는 고귀한 경험이 있다.

이처럼 우리가 가진 신에 대한 믿음은 과학으로 증명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논리적 증명이나 과학적 결론이 아니다. 그것은 과학 외적 영역에 존재하는 수많은 진리와 가치처럼 우리 삶을 추동하는 하나의 세계관이며 우리 삶의 방향이다. (본문 p152-153)

 

과학주의 무신론에 던지는 두 번째 질문은 "자연법칙이 어떻게 기원했는가?"입니다.

 

물질의 기원에 대한 질문을 피해 간다고 해도 별과 지구와 생물들의 탄생과 우주와 행성을 운행하는 중력 법칙을 비롯한 다양한 물리 법칙을 비롯한 자연법칙이 어떻게 생겨났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질문은 "인식론"에 대한 문제인데요. 100억 광년의 넓이의 우주, 광활하다는 표현이 한참 부족할 만큼 무한에 가까운 그 크기의 우주에 비해 지극히 작은.. 유명한 행성학자 칼 세이건의 표현을 빌리자면 "창백한 푸른 점"에 살고 있는 지극히 작은 인류는 짧은 과학의 역사에 비해 너무나도 거대한 시공 안의 우주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참 놀라운 일이죠.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수학입니다.

우주가 운행되는 방식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데 있어 문제가 없을 정도로 아니 이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매우 정교하고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복잡해 보이는 자연현상이 놀라울 정도로 일정하게 운행되고 있고, 그 과정을 수학으로 매우 명쾌하게 풀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주를 창조한 신은 놀라운 수학자라는 말이 회자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저자는 적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인간은 어떻게 수학을 이해하고 우주의 자연법칙을 이해하게 되었을까요?

 

이 부분에 대해 과학주의 무신론자들은 우주가 원래 그렇다는 답변 외에는 내어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명쾌하지 않습니다.

 

그럼 같은 3가지 질문에 대해 기독교는 어떻게 답을 할 수 있을까요?

기독교는 이 세 가지 질문에 어떻게 답할까?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세계관에 따르면 우리는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답을 얻을 수 있다.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였고 그래서 에너지와 물질이 존재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지혜와 지식의 풍요함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동일하고 오래 참고 신실하신 성품을 반영한 창조세계를 창조하셨고 창조세계를 운행하는 원리로써 자연법칙을 부여하셨다. 그래서 자연세계는 자연법칙에 의해 질서 있게 운행되고 인과관계를 따르며 예측 가능하기도 하다.

기독교의 창조주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한 뒤에 우주가 스스로 운행되도록 버리고 떠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우주를 붙들고 다스리면서 자연법칙에 따라 우주가 운행되도록 섭리하고 있다. 이것이 창조주에 대한 기독교 신앙의 고백이다.

그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에 따라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했다는 의미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창조세계를 다스리고 돌볼 대리자로 세우셨다는 의미다. 그 역학을 감당하기 위해서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하나님의 형상의 내용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세계를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지성적 능력이다.

하나님의 본성을 반영한 창조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조세계를 관찰하고 이름 짓고, 창조세계의 운영체제인 자연법칙을 파악할 능력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인간에게 부여하며 놀라운 지식과 지혜를 인간들에게 나눠주셨고 그래서 우리는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이성을 갖게 되었다.
(본문 p157 -158)

 

무신론자와 대화할 때는 첫째, 과학은 유신론이나 무신론을 직접적으로 지지 않는 중립성을 가지고 있다.

둘째, 과학을 명확히 이해하고, 과학주의 무신론자들의 주장을 명확히 파악하고 신앙의 지적 토대를 굳건히 다지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뒤디어 나오는 다양한 창조론에 대한 이해 및 창조를 이해하는 틀에 대해서는 이 책의 4부와 5부를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무신론 기자... 에서 이미 충분히 다뤘기 때문에 이 책 나눔에서는 생략하겠습니다.

 

긴 글 읽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평안한 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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