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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도서 - 하나님을 알자!/과학 vs 신앙?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 우종학 / 새물결플러스 #2

by 현명소명아빠 2019. 11. 5.

Main category: 신앙도서 - 하나님을 알자!

  • Subcategory: 과학 vs 신앙?
  • 추천 대상:
    • 머리론 진화론, 마음으론 신앙을 두고 갈등하는 분들
    • '창조과학', '젊은 지구론'이론에 신앙마저 흔들리는 것에 힘들어하는 분들
    • 신학과 과학이 대립만이 유일한 길인가에 의문을 가지는 분들
    • 친구와 과학 논쟁 중 진화론을 주장한 친구에게 무참히 깨진 우리 아들?!

2부에서는 성경과 과학에 대한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합니다. 관점은 1부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하나님이 성경과 자연이라는 두 가지 책을 주셨다는 관점을 통해 과학과 신학이 상호 모순되지 않고 양립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제일 먼저 걸리는 부분은 아마도 창세기 1장의 내용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한 것처럼 기록되어 있지만, 과학 상식을 가진 이들은 우주와 지구의 역사가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이라는 책에서는 우주의 역사가 100억년 이상이며 지구와 태양계도 수십억 년의 시간을 통해 창조되었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이것이 성경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죠. 그뿐이 아닙니다. 창세기에는 궁창 위에 물이 있었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말인즉슨 대기 권위에 물이 있는 층이 하나 더 있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죠. 과연 이 부분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이 차이를 대해야 할까요?

 

이것에 대해 저자는 과학에 그 원인을 찾기보다는 성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에서 그 원인을 찾습니다. 모든 책은 목적이 있고, 목적에 따른 장르가 있는데, 그것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이 다르게 접근한다는 것이죠.

 

마치 시라는 장르에서 꽃을 의인화시킨 표현에 대해 꽃이 어떻게 말을 할 수 있다고 하느냐라고 묻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성경은 과학 교과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어떻게(How)" 만드셨는지를 알리기 위해 적힌 책이 아닙니다. "누가(Who)"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는지를 알리기 위해 적은 책입니다.

 

과학은 반드시 가설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를 동반해야 합니다. 그 데이터를 통해 어떤일이 어떤 과정을 통해 발생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6일 동안의 창조 과정은 별로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 창세기 1장의 "하루"의 의미가 24시간이라면 수억년의 창조 과정과 배치된다.
  • 창조 순서에서 넷째 날에 태양이 창조되지만, 첫째 날부터 하루를 지정합니다. 지구의 자전을 통해 하루가 정해진다는 상식에서 태양이 창조되기도 전에 하루가 정해진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 창세기 1장과 2장의 순서가 서로 배치됩니다. 1장에서는 사람의 창조 순서가 가장 마지막인데 비해, 2장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기 전에는 초목과 채소 같은 식물이 없었다는 표현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저자의 대답은 아래와 같습니다.

  • 창세기 1장과 2장 모두 문자적인 의미로 볼 수 없다(팀 켈러의 주장을 인용)
  • 성경은 창조의 방법을 전하는 것에는 흥미가 없다. 이는 창세기가 쓰인 고대 근동 지역 사람들의 당시 사고방식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재료와 방법에 대한 관심은 없지만, 어떤 기능이 부여되었는지(기능적 창조)에 대해서 더 관심이 있었다.
  • 창조의 내용에 대해서도 창조의 주체와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전하는 부분에 필요한 내용이 아니라면 굳이 포함시키지 않았을 것이다.(공룡이 성경에 적혀 있지 않다고 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는 결론은 내릴 수 없다는 의미이다)

저자의 대답에 대해 더 정확히 이해하려면 우리는 고대 근동의 우주관에 대해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고대 근동 사람들은 우주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물론 현대적인 의미의 우주라는 개념 자체가 그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땅 위의 세계는 흔히 하늘이라는 개념으로 그려진다. 고대 근동 지역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우주는 철저히 지구에서 발을 딛고 바라본 관찰자의 입장에서 구성된다. 그 당시 사람들은 지구가 편평하고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고 믿었다. 이는 근동 지방이 지중해와 흑해 등 물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땅끝에는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 있었고 성경에 궁창으로 표현된 하늘에는 해와 달과 별들이 있으며 그 궁창 위에는 물증이 있다고 생각했다. 궁창 위에 물층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마도 비가 내려야 하기 때문에 물의 저장고가 하늘 어딘가에 있다고 믿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현대인들은 비가 내리는 고자 어이 수증기가 쌓여 구름이 되었다가 다시 물이 되어 지표면에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고대 근동 지역의 사람들은 아마도 비의 근원으로 하늘 위에 물층이 존재한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리고 모든 책은 인간의 언어로 적혀왔으며, 그 언어에는 그 시대의 문화와 시대배경이 담기기 마련입니다. (본문 p109)

 

이런 우주관이 고대 근동의 사람들과 히브리인들의 상식으로 통용되던 시기에 창세기가 쓰여졌다면 과연 창세기의 저자는 당시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적기 위해서 어떤 방식으로 기록을 하였을까를 생각해 보길 저자는 질문하고 있습니다.

 

묘사하는 우주의 창조 대상에 대해서는 당시의 우주관에 따라 적고 있지만, 핵심은 그 우주를 누가 창조하셨냐는 것이 그 첫 번째요, 창세기 1장에서 언급된 해와 달과 별 그리고 여러 가지 자연에 대해 그것이 신적 숭배의 대상으로 인식되던 시대의 사람들에 대해 "그렇지 않아!! 그것 또한 하나님의 창조물일 뿐이야!"라고 알리고 있는 것이 두 번째라 할 것입니다.

 

#3에서는 3부의 내용인 과학주의 무신론의 도전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평안한 밤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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