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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도서 - 세상을 알자!/소설을 읽읍시다~

가출(Run Away) / 조남주 / ASIA

by 현명소명아빠 2019. 11. 23.

Main category: 일반도서 - 세상을 알자!

  • Subcategory: 소설을 읽읍시다~
  • 추천 대상:
    •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작가님을 좋아하시는 분
    • 가볍게 흥미 있는 이야기를 읽고 싶으신 분
    • Foreigner who is interesting in Korean novel

 

이 책은 파주에 있는 해솔도서관에서 <작가의 발견> 전시도서로 전시되어 있는 코너에서 발견한 책입니다. 제가 인상 깊게 읽었던 "82년생 김지영"의 작가이신 조남주 작가님이 저자이셔서 얼른 집어 들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도서관 사서님들께서 기획한 도서 전시를 자주 활용하는 편입니다. 특히 전시 주제와 제가 찾는 분야가 겹칠 때는 너무 감사해하기도 하죠.

 

이 책은 전혀 두껍지 않습니다. 소설 자체만으로 67쪽, 그것도 한쪽은 한글, 다른 쪽은 영문으로 쓰여 있어 실제로는 그것의 절반 정도라 보시면 됩니다.

 

전미 세리님께서 영문 번역을 해주신 부분을 같이 싣고 있기 때문에 앞서 추천대상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

정서와 한국 문학에 관심이 있으신 외국인 분들께 추천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의 뒤편을 보니 K-픽션 시리즈라 해서 한국사회에 대해 여러 문제의식을 가진 대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전문 번역진의 번역을 통해 해외에 알리고 미국, 캐나다 대학교에서 대학 교제로도 사용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이라고 합니다. K-pop만이 아닌 다양한 한국 문학작품 또한 외국에 소개가 되고 알려지는 프로젝트가 있다니 너무 반갑네요.)

 

이 책은 일흔이 넘으신 아버지께서 '가출'을 하신 사건을 엄마가 자녀들에게 알리며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께서 가출하신 것이 의아한 이유를 아래와 같이 적고 있습니다.

차라리 출가했다고 하면 믿었을 것이다. 올해 나이 일흔둘, 치매 등 정신 질환은 없다. 일곱 살이나 어린 아내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 아버지. 그렇지만 엄마가 숟가락과 젓가락과 마실 물까지 완벽하게 제자리에 놓아야 식탁에 와 앉는 아버지. 정년까지 근무하는 동안 양가 부모님 장례 이외에는 한 번도 결근한 적이 없는, 삼 남매가 태어나던 날도 출근했다는 아버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다며 신용카드도 만들지 않고, 자동이체도 하지 않고 인터넷 뱅킹도 하지 않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가출을 했단다.
(본문 p9-10)

 

그런 아버지의 가출 소식에 모처럼만에 삼남매가 한자리에 모입니다. 그런데 심각하기만 할 거 같은 집의 풍경은 우리의 예상과 사뭇 달라 보입니다.

골목 입구에서부터 청국장 냄새가 진동을 했다. 어느 집에서 이렇게 늦게 저녁밥을 먹나 했는데 우리 집이었다. 엄마는 그 와중에 잡채를 하고 고등어를 굽고 호박전까지 부쳤다. 큰오빠 내외와 작은오빠는 이미 밥을 먹고 있었고, 엄마는 식탁에 내 수저를 놓았다. (본문 p16)

 

아버지가 청국장을 싫어하셔서 아버지 계신 날은 못 먹었던 청국장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여러 맛깔난 음식과 함께 내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속 시원한 듯한 모습,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랜만에 오는 자식들을 열심히 먹이고픈 어머니의 마음이 엿보인다.

 

어머니의 달라진 모습은 다른 곳에서 또 드러난다. 자식들이 아버지를 어떻게 찾는지 논의하다가 언성이 높아지자 평소에 큰 소리 한번 안 내시던 어머니께서 큰소리를 내시는 장면이다.

오빠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엄마가 소리를 꽥 질렀다.
"환갑 돼서도 싸울래? 내 제사상 앞에서도 싸울래? 나 너희 엄마고 여기서 제일 어른이야. 어떻게 부모 앞에서 이렇게 예의 없는 행동을 해? 아무도 내 의견 먼저 묻지 않더라. 나 혼자 지내는 거 걱정하지도 않고. 헛 키웠다. 헛 키웠어. 며느리 보기 부끄럽다!
놀랐다. 엄마의 목소리가 커서도 아니고 화를 내서도 아니었다. 발음이 너무 좋았다.
식탁에 둘러앉아, 과일을 앞에 두고, 차를 마시며 종종 가족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면 항상 아버지가 의견을 내고 엄마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리고 오빠들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문 p32)

 

어머니도 자기 의견이 있으셨고, 자기 목소리가 있으셨는데... 아버지의 뒤편에서 매번 혼잣말로 맴돌기만 하셨던 어머니. 그 어머니께서 아버지가 가출하신 뒤에야 드디어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으신 듯하여 응원의 마음과 안타까움의 마음이 공존했습니다. 사실 그 나이 때 어르신들이야 다들 비슷하셨을 듯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나마 덜 조명을 받지만 얼마 전만 해도 황혼이혼이 큰 사회 이슈로 거론되었던 것도 같은 모습이지 않을까 합니다.

 

여기서 하나 더 실소를 금치 못하던 장면은 바로 어머니께서 아버지가 가출하신 지 한 달이 다되어서야 자식들에게 이야기한 이유를 알게 된 장면인데요. 바로 공과금  납부 마감이 다가와서인데요. 평소에 아버지께서 매번 직접 하곤 하셔서 어머니가 할 줄 모르고 계셨다는.. 그래서 할 수 없이 자식들에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장면이 또 한 번 눈길을 잡습니다.

 

가출이 분명해 보이는 사건인지라 경찰이 수사에 임하는 자세도 뻔하고, 가족들로서도 딱히 아버지의 행방에 대해 알 수 없는 이때 즈음.. 어느 날 갑자기 신용카드 사용 문자 알림이 막내딸 휴대폰에 뜹니다.

 

그제야 막내딸은 예전에 아버지께 아끼면서 쓰시라고 드렸던 신용카드가 생각났습니다. 드렸던 일 년 동안에도 별로 쓰지 않으셨고, 가출 이후에 처음으로 사용 알림이 울린 카드. 막내딸은 가족에게 말하려다 말아 버립니다. 아버지와의 약속을 깨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서둘러 문자가 찍힌 곳으로 달려가 보기도 하지만 아버지를 찾지는 못합니다. 서운함과 안타까움의 시간이 얼마간 흐를 즈음 아버지가 없는 가족들의 모습이 많이 바뀌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고 오빠들과 나는 예전보다 자주 엄마만 있는 집에 들른다. 올케언니와 조카들까지 모두 오는 주말도 있고 조카들만 따라오는 주말도 있고 삼 남매만 오붓하게 모이는 주말도 있다.

열심히 음식을 차리던 엄마는 이제 음식 재료들만 사다 놓는다. 함께 김치전을 부쳐 먹고 삼겹살을 구워 먹고 만두를 빚어 먹었다. 작은오빠가 만두를 너무 예쁘게 잘 빚어서 놀랐다. 식사가 끝나면 오빠들이 싱크대에 나란히 서서 한 명은 세제 묻힌 수세미로 그릇을 닦고 또 한 명은 헹궈내어 설거지까지 깔끔하게 마쳤다. 내가 우리 오빠들 같지가 않다고 하자 올케 언니가 집에서는 많이 한다고 말했다.

"요리, 설거지, 청소, 빨래, 다 잘해요. 근데 이상하게 이 집 대문만 통과하면 무슨 다른 차원으로 넘어온 것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바닥에 척 들러붙더라고요." (본문 p59-60)

 

이 장면이 왜 그리도 눈길이 오래 머물던지요. 명절 때마다 흔히 보는 장면 아닐까요? 이상하게도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선 것처럼 전혀 당연하지 않던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법칙이 바뀌는..

 

이 책은 아래와 같은 구절로 끝맺는다.

미안하지만 아버지 없이도 남은 가족들은 잘 살고 있다. 아버지도 가족을 떠나 잘 살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언젠가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면 아무 일 없다는 듯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본문 p64)

 

특별한 스릴감도 엄청 대단한 사건도 없는 아주 단순한 일상 중 작은 일탈을 다룬 소설이지만,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네 가정에서 흔히 보는 장면에서 아버지만 없다면 바뀌는 모습들이라.. 

 

그래도 미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때 그분들은 그런 세상이 당연하셨고, 유일한 세상이었을 테니까요. 다만 자신의 목소리와 모습이 너무 커 가족들이 위축되고 있다면 한발 물러서는 지혜와 양보를 가지실 때가 되었다는 것만 인지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시대는.. 너무 빨리.. 너무 많이 변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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