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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도서 - 세상을 알자!/소설이 아니어도 좋은걸~

에디톨로지(창조는 편집이다) / 김정운 / 21세기북스 #2

by 현명소명아빠 2019. 11. 18.

Main category: 일반도서 - 세상을 알자!

  • Subcategory: 소설이 아니어도 좋은걸~
  • 추천 대상:
    • 창의적 혹은 창조적 사고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
    • 막연한 개념이 아닌 구체적으로 창의적 / 창조적 사고에 접근하고 싶은 분

 

#2는 Part2 "관점과 창조의 에디톨로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저자는 최근(?)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을 언급하며 관점의 변화에 대한 사회 전반의 현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많은 세상의 자기 계발서와 같이 어떻게 관점을 바꾸고 세상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지를 이야기 하기 이전에 기존 세상에서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던 관점이 어떤 영향들을 받아 왔는지, 특히 공간이란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좌에서 우로 글을 읽어 나가기 때문에 같은 도형이나 그림을 보고도 해석이 틀림을 이야기하며 그와 반대로 위에서 아래로 글을 읽어 내려가는데 익숙한 일본의 이야기도 같이 곁들입니다.

 

단순히 와~ 신기하다. 란 반응을 보기 위해 던진 이야기가 아니라, "보는 것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저자가 Part2 전반을 이어나가는 주제인 "관점"을 이야기합니다.

 

"관점"은 영어로 "Perspective"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의 어원은 '원근법', '투시법;과 그 어원이 같습니다. 그리고 지난 세기 서구 문명, 혹은 서구 열강이 그토록 압도적으로 세계를 주름잡고 침탈이 가능했던 이유를 여기서 찾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가 이해되려면 저자가 적은 서구 원근법의 전제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서구 원근법의 전제는 두 가지다. 첫째, 세상을 보는 눈은 하나여야 한다. 소실점에 대칭되는 위치의 시선이다. 바로 이때부터 서구 '객관성의 신화'가 시작된다. 세상을 보는 눈은 오직 하나여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다. 보는 사람마다 세상이 매번 달라져서는 안 된다. 서구 원근법은 모든 사람의 관점을 하나로 통일하고, 이 관점을 중심으로 세상을 재편하려는 시도다. 오늘날 다양성과 상대성을 뜻하는 관점, 즉 퍼스펙티브의 시작은 이렇게 '독점적'이고 '권력적'이다.

둘째, 3차원 세상은 소실점으로부터 떨어진 거리에 비례하여, 2차원의 평면에 그대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 합리성의 시작이다. 하나뿐인 소실점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물체는 '거리의 비례'에 따라 객관적 좌표가 정해진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합리적 기준이 마련된 것이다.

객관성과 합리성이라는 서구의 과학적 사고는 이렇게 원근법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이 서구 객관 성고 합리성의 신화에는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소실점, 즉 객관성과 합리성의 기준이 철저하게 '자의적'이고 '권력적'이라는 사실이다. 소실점을 누가 찍느냐에 따라 2차원에 투사된 결과물은 전혀 다른 것이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도무지 이 소실점의 위치를 의심하지 않는다. 아니, 의심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교육받는다.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원근법의 소실점은 철저히 권력적이다. 서구의 과학적 사고는 바로 이 권력을 아주 은밀하게 은폐하는 데서 출발한다. (본문 p144-145)

 

객관화된다는 것이 마냥 좋은 것으로만 쉽게 인식하던 저에게 있어 객관화 또한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그리고 그 주체가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좌우될 수 있음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그리고 그걸 인지하니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제도나 각종 사회 제도에 대해서도 다르게 볼 수 있는 시각적 차이가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이어서 계속 보도록 하겠습니다. 서양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단일 관점(싱글 퍼스펙티브)이고 동양은 다중 관점(멀티플 퍼스펙티브) 임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서양의 싱글 퍼스펙티브로 인해 모두가 단일 생각을 갖게 만들 때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을 우린 이미 역사에서 봐왔다는 것이죠. 

권력은 이렇게 공간을 원근법적으로 편집해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성안의 정원에서 도시 전체로 확대된 서구의 근대 권력은 이제 바다를 건너, 동양을 식민지로 만든다. 시작은 노골적인 폭력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합리성과 객관성으로 무장한다.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동양은 계몽되어야 한다는 도덕적(?) 책임으로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한다. 시작은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이었다. (본문 p167)

 

이런 서양의 싱글 퍼스펙티브와 다르게 동양의 경우 많은 다른 형태의 원근법을 다양한 작품 속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역 원근법'인데요. 원근법과는 반대로 가까운 것은 작고 먼 것은 크게 그려져 있는 것이지요. 원리는 간단합니다. 내가 그림을 보고 있는 시선 반대편에서 그림을 그린 것이지요. 주체적 시선이 상대화되었다고 어렵게 적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제3의 초월적 시선을 전제로 한 일명 '조감도(새가 내려다보는)의 관점도 동양화에선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동양이 서양에 침탈당한 이유를 동양의 발전의 늦음 그 하나의 이유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비교가 될 수 없는 것이죠. 단일 관점에서 사회의 통일화가 일어난 서양에 비해 동양은 절대왕정은 서양에 비해 훨씬 이른 시기에 이뤄졌지만 서양과 같이 강제로 일원화된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늦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입니다. 그리고 저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왜 우리가 우리를 침탈한 이들의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해야 하는지가 의문이란 점도 적어 봅니다.

 

지도도 마찬가지지요. 유럽 중심의 서구가 세상의 중심인 것으로 그려지는 것이 원래 지도의 모습이었으나(이 지도의 관점에서야 우리나라가 극동, 중동이 중동이 될 수 있습니다) 마테로 리치가 중국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중국이 중심이 된 새로운 지도를 만들었고 이 지도가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메르카토르 투영 도법입니다)

 

참고를 위해 위키백과 설명을 링크로 연결해 놓았습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B%A9%94%EB%A5%B4%EC%B9%B4%ED%86%A0%EB%A5%B4_%EB%8F%84%EB%B2%95#/media/%ED%8C%8C%EC%9D%BC:Usgs_map_mercator-ko.svg

 

메르카토르 도법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메르카토르도법으로 그린 세계지도.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그린 지도에서는 항정선이 직선으로 나타난다. 항해용 지도에 주로 쓰인다. 메르카토르 도법(Mercator projection) 또는 점장도법은 1569년 네덜란드의 게르하르두스 메르카토르가 발표한 지도 투영법으로서 벽지도에 많이 사용되는 대표적 도법이다. 원통중심도법과 원통정적도법을 절충한 이 도법은, 경선의 간격은 고정되어 있으나 위선의 간격을 조절하여 각도관계가 정

ko.wikipedia.org

이 지도에 의하면 유럽 대륙은 실제 크기보다 2배의 크기로 그려져 있으며, 저도 지도를 보며 늘 의문이었던 거대한 그린란드는 실제로는 아프리카 크기의 14분의 1 크기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노골적으로 아프리카오 남아메리카를 축소시켜 놓은 지도이지요. 물론 공 모양의 지구를 정확하게 평면으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며, 정확하고 안전한 항해를 위해 고안된 메르카토르 도법은 실제로 많이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누군가가 지도에 세상을 이렇게 표현해 놓았는데, 많은 이들이 이것에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그 말은 누군가의 의도 또한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우리의 인식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어서 저자는 인식이 공간을 달리 표현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공간으로 인해 인식이 영향을 받는 것에 대해서도 적고 있습니다.

 

저자의 독일 유학시절의 경험과 일본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한국 교실에서 왜 토론식 수업이 불가능한지, 그리고 일본 사람들의 행동과 인식이 왜 다른지에 대해 설명하는 중요한 열쇠가 바로 "공간"이 주는 영향이란 것을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독일의 나치즘이 1차 세계대전 패망 후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던 그 밑바탕에는 바로 공간이란 개념이 있었음을 저자의 기술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독일의 국경은 수시로 변경되었다. 잦은 전쟁으로 승전과 패전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중략)..

패전에 이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영토를 잃은 독일인들의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바로 이때 히틀러가 '레벤스 라움(생활권)'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타났다. 1924년 뮌헨 반란으로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집필한 "나의 투쟁"에서, 독일 민족은 유럽 전체를 독일의 레벤스 라움, 즉 독일의 생활권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히틀러는 주장한다.
..(중략)..

다윈의 진화론을 국가에도 적용해, 국가도 다른 유기체와 마찬가지로 충분히 먹고, 자고,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레벤스 라움이 히틀러의 용어가 되는 데는 칼 하우스호퍼라는 인물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중략)..

하우스호퍼도 국경은 생명체의 피부처럼 살아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을 히틀러에게 전달한 사람은 후에 나치 독일의 이인자가 된 루돌프 헤스였다. 헤스는 뮌헨 대학 재학 당시, 하우스호퍼의 조교였다.

하우스호퍼의 레벤스 라움은 나치 독일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다. 일본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가 된다. 하우스호퍼는 독일관 일본을 왔다 갔다 하며, 두 나라의 제국주의가 닮은꼴이 되도록 가교 역할을 했다.
..(중략)..

그의 활동에 감동한 일본은 하우스호퍼의 레벤스 라움을 일본 제국주의의 이론적 토대로 받아들였다. 그를 흉내 낸 개념도 만들었다. '대동아공영권'이다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은 히틀러가 부르짖은 레벤스 라움의 변종이라는 이야기다. (본문 p215-217)

 

마지막으로 프로이센 군대로부터 시작된 사람들을 하나의 틀로 묶어 단일화시키기 위한 "제복 페티시"에 대한 부분과 백화점과 편집숍에 대한 차이를 설명하며 공간과 인식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부분에 대해서는 한번 차분히 읽어보기를 권면합니다.

 

#3에서는 Part3 "마음과 심리학의 에디톨로지"를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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