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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도서 - 세상을 알자!/소설이 아니어도 좋은걸~

에디톨로지(창조는 편집이다) / 김정운 / 21세기북스 #1

by 현명소명아빠 2019. 11. 16.

Main category: 일반도서 - 세상을 알자!

  • Subcategory: 소설이 아니어도 좋은걸~
  • 추천 대상:
    • 창의적 혹은 창조적 사고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
    • 막연한 개념이 아닌 구체적으로 창의적 / 창조적 사고에 접근하고 싶은 분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본 곳은 마을문고 서가에서였습니다. 제목이 인상적이었는데.. 제목에서 톰 크루즈의 이혼 소식과 함께 세상에 유명해진 신흥 종교인 "사이언톨로지"가 연상되었기 때문이었는데요. 이 책은 창조적 혹은 창의적 사고는 막연히 하늘에서 떨어진 그 무엇인가가 아닌 현존하는 어떤 것을 편집하고 재창조하는 것이 창의 혹은 창조적 행위의 본질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표절"에서 가장 자유롭지 못한 분야인 대중음악 분야에서도 잘 먹히는 코드, 인기많은 코드 진행 등의 공식들이 돌고 있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주장이기도 합니다. 단, 표절과 편집은 분명히 다른 개념이겠지요. 여기서 표절과 편집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적기보다는 저자의 주장들을 따라가 보면서 그 차이를 직접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총3개의 part로 나뉘어 있고 첫 번째 "지식과 문화의 에디톨로지", 두 번째 "관점과 장소의 에디톨로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음과 심리학의 에디톨로지"로 구성됩니다.

 

이 책의 문체는 무겁지 않습니다. 너무 학술적이지도 않습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밝혔듯이 "쉽고", "재미있게" 쓰고 싶었다는 저자의 말은 거짓은 아닌 것이 시종일관 커피숍이나 가벼운 술자리에서 관심사를 공유하는 친구나 지인과 함께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느낌을 책 읽는 내내 받았습니다.

 

자, 그럼 Part1 "지식과 문화의 에디톨로지"부터 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의 Part1 첫장을 펼쳐보면 열이면 열 책장을 황급히 덮고 주변을 한 번 돌아볼 것 같습니다. 금발의 미모의 아가씨가 헐벗은(?) 모습으로 누워있고, 신체 중요 부위에 아이팟을 놓고 있는 아주 자극적인 사진이 떡하니 있기 때문인데요.

 

저자는 자신이 일본의 아키하바라 전자상가 지역을 건다가 본 광고사진을 첫 장에 놓으면서 인간은 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좀 더 쉽게 말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선택적 지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인간의 뇌는 수많은 자극에 노출되어 있고 일일이 그 모든 자극에 반응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내부의 조건에 의해 선택적으로 자극을 받아들인다는 것인데요. 창의적 사람과 보통 사람은 바로 이 자극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차이가 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말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느라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일도 발생한다는 것인데요. '보이지 않는 고릴라'실험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가 주장하는 "무주의 맹시"입니다.

 

자극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지식을 구성하는 첫 번째 단계임에도 이미 우리는 2가지의 왜곡된 현상을 보게 됩니다. 즉 이런 왜곡을 방지하며 정보를 받아들이고 구성하고 해체되고 재구성하는 편집학을 에디톨로지라고 저자는 명시합니다.

 

그리고 에디톨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래 개념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이해해야 합니다.

 

  • 지식 : 정보와 정보의 관계 / 새로운 지식이란 정보와 정보의 관계가 달라지는 것
  • 정보 : 의미가 부여된 자극 / 해석을 통해 의미가 부여된 자극을 정보로 명명

이 개념의 정의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으신가요? 이전의 지식은 어떤 것에 대한 그 자체의 의미나 설명이었다면 현재는 그런 내용들 간의 관계를 의미한다는 것이죠. 보다 데이터베이스화 되고 마치 인터넷처럼 다양하게 서로 얽히고 영향을 주는 환경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전에 대학이란 학문기관에 한정되어 있던 지식권력은 인터넷과 각종 sns의 발달로 인해 더 이상 대학의 전유물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보는 얼마든지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주 전문적이지는 못하지만 각자 나름의 아는 바와 경험한 바를 블로그, 브이로그, 유튜브 등을 통해 공유하고 있고 그렇기에 다양한 분야와 각 분야에서도 다양한 수준을 위한 각종 정보가 이미 충분히 넘쳐 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의 표현처럼 "편집자가 중요한 세상"이 도래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보는 다양하고 넘쳐나지만 그 정보를 조합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편집자의 의도나 성향에 따라 동일한 사건이 다양하게 해석되고 다양한 주장의 근거로 쓰일 수 있음을 우리는 요즘 정치뉴스를 보며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새로운 주류의 사회 흐름에 대해 저자는 아래와 같이 적습니다.

종이 위에 쓰인 텍스트 중심의 논문식 지식 편집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A4용지에 글자 크기를 정하고, 각주. 미주. 참고문헌의 작성 요령에 따라 쓰인 텍스트로서의 논문을 심사하고, 폼 나는 가운의 석. 박사 학위를 주는 방식으로 유지되는 대학의 지식 편집 권력은 이미 끝났다.

이제 전혀 다른 방식의 새로운 지식 구성 원리가 지배하고 있다. '에디톨로지'에 기초한 '하이퍼텍스트'시대, 즉 탈텍스트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본문 p51)

 

탈 텍스트 시대의 상징을 나타내는 한 가지를 꼽는다면 바로 '마우스'일 것이다 라고 저자는 적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텍스트 시대를 상징하는 키보드에서 GUI(Graphic User Interface)에서 마우스로 단지 관심을 '클릭'하면 바로 '링크'가 되는 시대를 연 것이 바로 마우스 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애플에서 쫓겨났던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복귀하며 꺼내 든 새로운 개념은 '터치'였습니다. 같은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지만 어느 누군가는 그곳에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시했고, 어느 누구는 디지털의 중심에 아날로그적 개념인 터치를 입혔습니다. 그 어느 누군가는 바로 스티브 잡스입니다. 바로 디지털 세상의 창조의 아버지라 불려도 손색없는 인물이라 할 것입니다.

 

새로운 사회 흐름을 탈 텍스트라 표현하였는데, 그와는 유사하지만 또 다른 접근을 한 인물들에 대해서도 저자는 적고 있습니다. 바로 '도올 김용옥 선생'과 '이어령 님'입니다.

 

많은 학문을 공부하는 이들은 대부분 대가의 학문을 따라갑니다. 우리는 그것을 '전공'이라 부르지요. 역사 속 유명한 서구 학자들의 학문과 이론을 오랜 시간 공부하고 연구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대부분 끝납니다. 그런 한국의 학문적 세상에서 도올 김용옥 선생은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동양철학이나 서양철학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 이야기들을 조합하여 내 이야기를 한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는 것이죠. 그가 한국 교수들이 두려워하는 자기 생각 말하기가 가능했던 이유는 그의 '크로스 텍스트'적 사유 때문이라 적습니다.

대부분의 한국 교수들이 두려워하는 자기 생각 말하기, 즉 주체적 글쓰기가 김용옥에게 가능했던 것은 그의 '크로스 텍스트'적 사유 때문이다.

동양적 텍스트의 근본적 이해와 더불어 서구 해석학적 방법론이라는 그의 무기는 해당 텍스트를 둘러싼 사회, 문화, 언어, 정치적 콘텍스트(맥락)에 대한 비판적 이해를 가능케한다.

이러한 크로스 텍스트적 독해는 당연히 주체적 글쓰기로 이어지게 된다. 텍스트의 콘텍스트를 상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 p70)

 

그에게는 거의 무한한 해석의 근거가 되는 동양고전이라는 무기가 있고, 이 말은 그가 가진 해석의 근거가 무한하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크로스 텍스트가 가능하기에 그는 남이 전혀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이어령 선생님의 경우는 개인적으로 더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그는 남들이 의심을 품지 않고 접하는 지식들에 대해 먼저 의심과 질문을 던집니다. 그것에 대한 좋은 예가 바로 자신이 어릴 적 천자문에 대해 의심을 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남들이 아무 의심 없이 당연한 듯 외우는 천자문에 의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천. 지. 현. 황의 순서에 대해서도, 구조에 대해서도, 그 해석에서 왜 하늘이 검다고 하는지도... 그는 이렇게 99%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지식에 대해 질문과 의심을 던진 사람이었고, 그리고 그 의심과 질문을 통해서만이 동양사상에 숨겨져 있는 방향과 색깔의 연관 구조를 알 수 있는 열쇠가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텍스트를 연결만 하는 김용옥 선생과 달리 텍스트의 선택과 결합구조를 해체하는 하이퍼텍스트적 사고를 중시합니다. 말은 쉽지만 평균을 강조하고 남들과 다른 것을 문제로 손가락질하는 한국사회의 오랜 모습 속에서 옛날 분이신 이어령 선생님의 의심과 질문을 앞세우는 자세는 쉽지 않은 자세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남다름이 그의 주옥같은 글들의 기반이 되었으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어서 저자가 독일에서의 유학 생활 시 경험했던 노트와 카드의 차이에 대한 부분(독일 학생들은 이미 아날로그적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하고 있었네요)과 과거와 현재의 지식들의 구조화의 차이(계층적 구조 vs 네트워크적 구조)를 이야기함을 통해 앞서 저자가 언급하였던 지식의 새로운 정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분명히 시대는 달라졌으며 그 달라진 시대를 제대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관점과 생각의 흐름도 모두가 변화되어야 함을 저자는 본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Part1을 마무리하기 앞서 사실 제가 하고 있는 것 또한 데이톨로지란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책을 읽고 독후감 쓰듯 책 내용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의 내용을 통해 제 생각을 같이 적고 편집하는 작업을 하고 있으니 저 또한 의도하지 않았지만 에디톨로지의 한 부분이라 생각되니 재밌는 것 같습니다.

 

다음 #2에서는 Part2 관점과 장소의 데이톨로지를 다뤄보겠습니다.

평안한 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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