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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도서 - 하나님을 알자!/기도와 은사.. 어렵지만 알아야하는 주제

[책요약] 열매 맺다 / 필립 케네슨 / 새물결플러스 - 온유 | 절제

by 현명소명아빠 2020. 12. 30.
시대의 분별과 성령의 열매 열매 맺다 - 온유 | 절제
필립 케네슨 / 새물결플러스

오늘은 이 책의 마지막 장인 9장 온유, 10장 절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날은 폭력이 참 보편화(?)된 사회를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뉴스에서는 매일 같이 폭력 사건 사고에 대해 다루고 있고, 영화와 드라마 예능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폭력적인 말과 행동은 이제는 당연한 요소처럼 포함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9장 온유에 대한 한 줄 설명은 '공격적인 세상에서 맺는 열매'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를 지칭하는 단어는 '유순함', '겸손함'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고, 그 포괄적 의미를 생각하자면 인간관계의 기초를 교만과 권력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 두는 성품'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성품은 '가난한 자', '괴로워하는 자', '겸손한 자', '온유한 자', '낮은 자'를 가리킬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궁극적 의미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멈추고 그 통제권을 겸손히 하나님께 돌린다'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성령을 거스르는 것, 성령을 소멸하는 것, 이는 성령의 열매를 갈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해야 할 위험한 행위다. 위에서 언급한 문맥들을 보면, 이런 위험이 생기는 것은 우리의 완고한 교만과 하나님과 상관없이 우리의 장래를 확보하려는 욕망 때문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과 우리의 능력을 신뢰하지 말고 겸손해져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과 믿음을 두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나라는 거꾸로 뒤집힌 나라, 곧 인간이 제정한 질서를 뒤집어서 하나님의 질서를 회복하는 곳이다. (p312)

성경에 의하면 온유함, 유순함, 겸손, 낮아짐, 그리고 오래 참음까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각각은 우리에게 세상을 절대적으로 통제하려는 마음을 포기하도록 요구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세상에서 역사하고 있음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권력을 장악해야겠다는 생각에서 해방된 자들이다.

우리는 우리의 뜻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일, 우리 자신을 너무 높게 생각하는 일, 우리가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는 일, 우리의 몫을 챙기려고 우리 자신을 내세우는 일, 공의를 이루려고 보복하는 일 등에서 모두 해방되었다.
(p316)   

그리고 우리는 이런 '겸손한 권리 포기'의 모습을 예수님과 성령님의 모습에서 잘 배울 수 있습니다. 스스로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까지 낮아지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과 스스로를 증언하지도, 스스로 주목받으려 하지 않으시고 오직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성도로 알게 하시는 성령님의 모습에서 말이지요.

 

이런 온유의 열매를 맺는데 방해되는 걸림돌을 알아보겠습니다.

아래 두 가지 문화의 모습은 사회적으로 만연해 있지만, 어느덧 당연한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부분입니다.

1. 공격성과 자기 선전을 조장하는 문화

2. 힘 있는 자리를 열망하는 문화

 

그럼 이런 문화적 방해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 온유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1. 기도로 우리의 태도 바꾸기 :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라고 가르쳐주신 이유는 기도가 원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도가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2. 양보하는 법 배우기 : 갈등의 상황에서 기꺼이 양보하고 또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태도

3.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 Like Jesus! 


마지막 열매인 절제에 대한 한 줄 설명은 '중독이 만연된 세상에서 맺는 열매'입니다.

 

사실 절제란 덕목은 고대사회에서 강조되던 중요한 항목입니다. 이것을 지칭하는 그리스어 단어는 '엥크라테이아'인데요. 그런데 의외인 것은 신약성경에서 이 헬라어 단어 사용하는 의미는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사용되는 의미와는 차이가 있음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 저자들이 그리스 윤리의 중심에 있는 이 개념-엥크라테이아에 호소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힘이 그들에게 주어졌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힘은 그들 스스로 만든 것도 인간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힘은 예수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고, 새로운 생활 방식을 가능케 했으며, 예전의 죽음의 방식과는 크게 대조되는 삶의 모습이었다. 
...
그러므로 신약 성경의 저자들이 엥크라테이아의 개념을 사용할 때 무슨 의미를 염두에 두었던지 간에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자아의, 자아에 의한", 한마디로 자신이 통제의 주체가 되는 의미로 "절제"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절제의 개념은 중요하지만, 그것을 통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활은 자아의 요구로 인함이 아닌, 성령의 타인 지향성에 의해 분명한 목적과 방향을 가지고 촉발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 이런 절제를 방해하는 걸림돌은 무엇이 있을까요?

흔히 도박이나, 마약 중독 같은 사회적 통념에서의 '중독'된 모습을 그 반대의 모습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저자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1. 행복을 추구하는 문화 : 행복의 추구를 곧 즐거움의 추구로 동일시하여 무절제와 중독으로 쉽게 빠지게 유도하는 문화

2. 자력으로, 자신을 위해, 자신을 통제하는 문화 : 성경적 절제와 자력으로 인한 통제/자제력을 혼동케 하는 문화

3. 모든 일에 중용을 강조하는 문화 :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적당히'를 적용하는 문화

 

이러한 문화 속에서 절제라는 열매를 어떻게 맺을 수 있을까요?

1. 좋은 예배는 우리로 하여금 '건전한 즐거움의 신학'을 계발하도록 돕는다 :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초점을 맞추게 합니다.

2. 좋은 예배는 우리로 하여금 '도덕적 성품의 신학'을 회복하게 한다 : 내가 주체가 되거나 내가 대상이 되는 신학이 아닌 성령에 의한 그리고 타인을 향한 신학을 회복하게 합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은 성도라면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열매가 의미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그리고 일상 속에서 어떤 것인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이 책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가 어떻게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를 알게 도와줌으로써, 열매 맺는 성도의 삶을 잘 지향하도록 도와주는 소중한 책입니다.

 

긴 시간 이 과정을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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