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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도서 - 하나님을 알자!/기도와 은사.. 어렵지만 알아야하는 주제

[책요약] 열매 맺다 / 필립 케네슨 / 새물결플러스 - 희락 | 화평

by 현명소명아빠 2020. 11. 4.
시대의 분별과 성령의 열매 열매 맺다 - 희락 | 화평
필립 케네슨 / 새물결플러스

 

3장 '희락'에 대한 첫 줄 소개로 '욕망을 조작하는 세상에서 맺는 열매'라고 적혀 있네요. 왜 우리는 희락을 의해하기 위해서는 세상에 대해서 이해해야 하는지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세상을 이해하기 전에 유사한 용어에 대한 저자의 명확한 정의의 차이를 짚고 가려하는데요. 바로 '기쁨'과 '쾌락'입니다. 그 차이는 명확한데요. 그 자체가 대상인지 아니면 어떤 것으로 기인해서 얻는 것인지의 차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기쁨과 쾌락은 둘 다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즐기는 일을 내포하고 있다. 그 대상을 기뻐하는 이유뿐 아니라 그 기쁨의 대상도 그에 따른 기쁨의 특성에 영향을 미친다. 
...
둘 다 매우 즐거운 경우에 해당하지만, 그 즐거움의 특성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서 끌어낸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
그러므로 쾌락과는 달리 기쁨은 기쁨 자체만을 추구할 수 없는 것이다. 기쁨이란 우리가 찾고 있던 것을 발견할 대 오는 만족감이다. 그런즉 기쁨 자체를 추구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것을 찾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찾을 때 수반되는 즐거움을 원하기 때문에 그것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 (p90)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기쁨(희락)의 큰 특징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또 다른 큰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의 또다른 뚜렷한 특징은 '엄청난 슬픔과 상실감 속에서도 경험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바로 기독교 공동체의 기쁨과 세상적인 기쁨, 행복과의 차이가 있다.  (p94)

정반대에 서있을 것 같은 '슬픔, 상실감'과 '기쁨'이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운데요. 세상에선 고통과 슬픔이 없는 상태를 곧 행복과 기쁨이라고 생각하지만, 기독교적 기쁨은 우리의 감정이나 현상에 대한 반응이 아닌 '하나님이 계실 때 느끼는 합당한 반응'입니다. 그 대표적 예가 사도 바울이라 하겠는데요. 모함과 오해로 인해 모진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지만, 오히려 찬송하는 그의 모습에서 기독교적 기쁨이 무엇인지를 확연히 체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기쁨(희락)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저자는 짚어주고 있는데요.

1. 욕망을 조작하는 문화 : 행복과 기쁨의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게 만드는 문화

2. 새로운 것을 찬양하는 풍조 : 다양성과 새로움만을 추구하게 만드는 문화

3. 조금만 더라는 풍조 : 끝을 모르고 추구하는 탐심을 부추기는 문화

4. 불안과 두려움을 낳는 문화 : 대다수를 따르지 않으면 소외될 것이라고 위협하는 문화

 

이런 문화적 공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 안의 희락(기쁨)을 지킬 수 있을까요?

1. 예배 중에 기뻐하기 : 우리가 예배와 감사에서 기쁨을 경험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창조 목적이기 때문2. 자족감 자라게 하기 :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욕망을 소멸하거나 줄이는 것이 아니라, 욕망과 애정의 대상을 하나님께로 온전히 올리는 것이다.3. 전통 다시 끌어안기 : 오랜 세월 유지되고 유익을 끼쳐온 교회 전통에 대해 귀 기울이기4. 아이들과 즐기기 : 아이들 그 자체로 기쁨이 충만해 있으며, 그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경험을 통해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기쁨을 누림

 


화평에 대한 한 줄 설명은 '파편화된 세상에서 맺는 열매'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화평(평화)의 의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개념보다 훨씬 포괄적이고 풍요로운 개념이라고 저자는 적고 있는데요. 다만, 다툼과 분쟁을 중재하는 정도의 개념이 아닌 더 적극적인 개념이라고 합니다. 바로 우리의 모든 관계에 스며 있는 평안과 온전함과 조화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평화와 온전함과 구원은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가르침을 신약성경 전체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가르침을 통해 전한 화평은 세상에서 흔히 통용되는 '죄-폭력-복수-주음'의 순환 고리에서 벗어나 '하나님에 의해 가능케 된 평화-의로움-평화'로 얘기되는 새로운 순환에 참여하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화평(평화)에 대해서 한 가지 역설에 대해서도 우리가 짚고 넘어갔음 하는데요.

평화는 무엇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긴 하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이기도 하다. 
...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지만 농부의 수고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평화와 온전함을 선물로 주신다고 믿고, 우리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사실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릴 것이라고 선언하셨을 정도다. (p136)

 

그럼 이런 소중한 화평을 방해하는 사회 문화적 걸림돌은 무엇이 있을까요?

1. 세계를 공적/사적 영역으로 나누는 문화 : 이런 문화적 추구로 인해 사람들은 신앙을 사적인 취향 정도로 생각하도록 만들어 버림 / 내 신앙과 삶을 동일 선상에 놓지 않고 나눠 버림 / 이중적 잣대와 이중적 삶

2. 삶의 구획화 :삶 속에서 각각 다른 자아와 모습을 만들어 내 안에서 파편화 현상이 발생

3. 이익 집단식 정치의 확산 : 현대 민주사회에서 다양한 이익집단이 생겨나 서로 대립하는 모습을 우리의 신앙 공동체에도 투영

4. 자신들의 권리를 옹호함 : 자기 자신이 판단과 추구의 주체가 됨

5. 폭력을 허용함 : 나와 다른 입장의 사람들을 쉽게 위협하는 존재로 간주하여 여러 형태의 폭력을 사용하거나 재가함

 

특히 3, 4, 5번은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기독교의 문제점을 잘 지적해주는 사항이라 생각합니다. 정치 세력화되고, 자신들의 이익과 권리에 목소리를 높이며, 그것을 위해서는 폭력도 정당화시키는 많은 불합리한 교회 내 그리고 세상에서의 교회의 모습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문화와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화평(평화)이라는 열매를 기를 수 있을까요?

1. 그리스도의 몸에 영입시키는 세례 : 세례는 그리스도의 몸에 영입되는 것이고 내가 기존에 추구하던 모든 것은 예수님과 함께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남을 말합니다. 또한 거듭남 우리는 개별적 존재가 아닌 그리스도를 머릴로 하는 지체가 됩니다.

2. 서로 덕을 세우기 :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를 사적인 소유물로 여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3. 서로 권고하기 : 그리스도의 몸이란 이런 폭넓은 정치적 틀 안에서만 우리가 서로 권고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4. 서로 용서하기 :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의 죄 사함에서 가장 뚜렷이 그 모습이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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