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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집사 어디가~ 시즌2

[시즌2/#3] 왜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고집만 세지나

by 현명소명아빠 2019. 10. 2.

요즘.. 아니 사실 꽤 오래전부터 김집사 눈에 거슬리고, 귀에 거슬리는 모습들이 있어 왔습니다.

그 하나는 정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 이야기입니다.

 

두 이야기 모두 민감한 주제여서 그런지, 그 이야기만 나오면 사람들 눈빛이 변하는 것을 김집사는 많이 봐왔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거나 나쁘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 완고한 것이 말로 표정으로 표출되는 것을 김집사는 거슬려합니다.

 

사실 대화란 것은 내가 알고, 느끼고, 믿는 것을 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납득하고, 공감하는 것이 대화일진대.. "귀"는 막고 "입만" 열고 하는 대화 같지 않은 대화가 저 2가지 주제에선 너무 많이 보이고 있지요.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그 행위로만 끝나지 않고 꼭 다음 단계로 넘어가곤 하는데, 그것은 나와 다른 생각, 입장을 가진 이들을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일을 서슴치 않는 행위이지요.

 

그런데 이럴때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 완전히 다른 인격의 사람이 내면에서 툭 튀어나온듯하다는 것이죠. 예의가 없는 것은 기본이요, 사람을 때리거나 욕하고 비난하는 수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하는 대부분의 분들이 나이와 사회적 지위와 심지어는 신앙을 가지신 분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꼭 연세가 있으신 분들만이 아니지요. 젊은 층에서도 그런 폭력성을 쉽게 드러내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다만, 연세가 있으신 분들의 경우 대다수가 사회적 지위와 재산정도가 있으신 분들이 많으시고, 그 뜻은 그렇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게 그들의 생각을 강요하거나 표출할 수 있는 기회(?)가 젊은 세대에 비해 더 많다는 뜻이 됩니다.

 

 

실제로 김집사는 요즘 성가대 아침 연습을 할 때 마다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연세가 좀 있으시고 평소에도 앞에 나와 이야기할 기회가 많으신 그분은, 아침에 오자 마 자부터 정치적 이슈에 대해 주변 사람들의 의향과는 상관없이 "썰"을 풀어놓으시기 시작합니다.

 

김집사는 목을 풀고 발성을 가다듬고 일찍 와서 찬양 연습 준비에 몰두하고 싶은데, 그분은 큰소리로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반대쪽의 인물들에 대해 비난을 시작합니다. 1분, 2분, 5분, 10분.. 

 

그분께 

 

"그만하시고 연습 준비 하시면 안 될까요?"

"이렇게 이른 시간이 기왕 오셨는데, 꼭 그런 일로 이 시간을 허비하고 싶으신가요?"

 

라고 얘기하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지만 김집사는 꾹 참습니다.

들리지도 않을뿐더러, 한국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 행동일 테니까요. 그 뜻은 그 결말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도 됩니다.

 

 

평소에는 감정적으로 그런 모습들에 반응하던 김집사는 어느 날 왜 그럴까란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궁금하긴 했지만, 적당한 해답을 찾지 못해 답답하던 차에 방송에도 여러 번 나오신 유명한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님의 "열두 발자국"이란 책에서 그 해답 중 하나의 단서를 찾았습니다.

 

이 책의 첫 번째 발자국 주제인 "선택하는 동안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에서 말이죠.

 

이 책에서 젊은 시절에 현명한 의사결정을 했던 리더라도 나이가 들면 실책을 범하게 되는데, 나이가 들수록 "인지적 유연성"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죠. 인지적 유연성이란 상황이 바뀌었을 때 자신의 전략을 바꾸는 능력을 말하는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것을 잘 못하게 된다는 것이죠.

 

젊은 시절의 경험으로 의사결정은 더 빨라지지만 돌이키지 않는 고집. 이것을 아널드 토인비는 "휴브리스(지나친 자기 과신)"이라 말합니다.

 

이 것은 정말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보고 꾸준한 훈련을 통해 자기반성과 열린 생각을 지속하시는 일부의 분들을 제외하고 그냥 삶에 바삐 사는 대다수의 분들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그런 모습으로 되어 간다는 것이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저 사람이 저걸 믿는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지 않을까?"

 

라는 태도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런 태도는 점점 다른 이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게 되는 것을 방해하게 되고, 완고한 고집은 끝내 다른 입장의 사람을 공격하면서도 양심의 거리낌이 없게 만들어 버리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정치인들이 이런 프레임을 만들어서 그런 모습을 갖게끔 유도하는 것도 한몫을 한다고 봅니다.

 

김집사는 이 일련의 생각들의 단편들로부터 2가지 결심을 해봅니다.

 

첫째는 "분명한 목표"를 기준으로 실시하는 "자기 부인의 꾸준한 훈련"이고,

둘째는 내가 이해하지 못해 힘들어하고 미워하던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근거를 하나 찾았으니 더 이해하고 용납해 보도록 노력해야겠다입니다.

 

"분명한 목표"는 삶을 통해 겸손의 모범을 보이신 예수님이십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한복음 13:14-15)

 

 

그리고 자기 부인의 꾸준한 훈련은 사도바울의 고백과 같이 주님 안에서 날마다 우리에게 일어나야 할 그러나 인식과 노력 그리고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훈련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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