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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도서 - 하나님을 알자!/성경상 중요 개념을 짚어봅시다!

욥, 까닭을 묻다 / 김기현 / 두란노

by 현명소명아빠 2022. 7. 9.

욥. 까닭을 묻다 -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서 만난 하나님
김기현 / 두란노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22018059

 

욥, 까닭을 묻다

고통의 밤을 지나는모든 사람을 위한 욥기“욥기는 욥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우리 모두의 이야기다.우리는 모두 또 한 명의 욥이고, 욥들이다.”《욥, 까닭을 묻다》는 로고스교회 김기현

book.naver.com

 

사실, 욥기는 스토리는 꽤나 단순하고, 성도라면 대략적으로 어떤 내용인지에 대해 다른 서신서나 선지서 대비 훨씬 잘 이해하고 인지하고 있는 성경이긴 합니다. 그러나 저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성경이기도 합니다.

 

로고스 교회 김기현 목사님이 쓰신 책 '욥, 까닭을 묻다'는 때로는 신학적으로, 때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자전적으로 녹여내어 쓰신 책입니다. 때로는 고난 가운데 있는 욥의 입장에서, 때론 친구들의 비판에 항거하는 욥의 모습으로... 작가는 욥기의 내용을 풀어가고 있습니다.


욥기의 시작은 엉뚱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대전에 마치 신하 중 하나의 모습처럼 사탄이 비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욥을 칭찬하시니, 까닭 없이 그가 그러겠냐며 시험하시길 종용합니다. 그리고 죽지만 않았을 뿐이지, 자식들도, 재산도, 건강도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조차 모두 상실한 채 비참하게 연명하고, 그런 욥에게 친구들이 위로하러 찾아오며 기나긴 논쟁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요즘 교회에서 만약 욥과 같은 모습을 한 성도에 대해 뭐라 말할까라는 입장에서 글을 적고 있는데요. 환영받지 못하는 성도의 모습, 거룩하지 못한 모습이지 않았을까 하고 그려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순종과 인내를 미덕으로 하는 교회 문화에서 지속적으로 불만을 토해내는 욥의 모습은 사실 그다지 환영받을만한 모습은 아닐 테니까요. 오히려 조용히하고 인내하면서 더 기도하라고 조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욥의 자세를 두둔합니다. 아니 두둔하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 권장합니다. 그 자신도 하나님 앞에 비참한 지경 가운데서 소리 높여 불만을 토로했던 한 사람으로서 강하게 권면합니다. 목소리를 높여서 토해내라고... 다만, 하나님께 말이죠.

욥기 3장에서 욥은 입만 열면 죽고 싶다는 말을 반복하지만, 문제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곧장 치고 올라가는 대범함과 급진성을 품고 있다. 자신이 당한 고난에 대해 하나님에게까지 거슬로 올라가서 문의하고 근본적으로 검토하는 욥은, 래디컬리스트다. 

이러한 급진성은 한편으로 친구들의 격한 반발을 초래한다. 인습적인 신앙에 사로잡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살던 이들이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
욥 같은 우리의 욥들은, 욥처럼 지금보다 더 철저하게 불만을 품고 하나님께 달려들기를 바란다. 하나님과 끝장날 때까지 한 판 붙었던 야곱처럼 씨름해야 하리라.  그렇게 하는 이들을 주변에서 만나면 '아. 이 사람은 욥이구나. 욥처럼 고난을 받는구나. 욥처럼 거침없이 말하지만, 욥처럼 살고 싶어서 저러는구나'생각하고, 욥처럼 하나님께 대들라고 말해 주자.  (p68)

이 책은 또한 욥의 세 친구들이 제기한 비난과 비판에 대한 해석을 같이 담고 있습니다. 사실 이 책에서도 동의하는 바이지만, 친구들의 비판과 의견을 따로 떼어내서 보자면 딱히 틀린 내용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보면 혼란이 생깁니다.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거야?

아니, 친구들의 말이 뭐가 틀린 거야?

 

라고 말이죠.

 

예를 들어 철저히 신명기적 관점에 근거하여, 욥이 '벌'을 받았으며, 그 이유는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딱히 틀린 점이 없어 보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표현처럼 '공의의 하나님'이시니까요. 그런 그의 주장의 문제점을 이 책에선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학적 관점으로 고난을 보면, 고난 받는 자는 뭔가 죄가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지 않고서야 선하신 하나님이 징계하시지 않았는데 어찌 벌을 받으며, 잘못한 것도 없이 어찌 화가 있을까. 그러니까 신명기 역사관을 정확히 뒤집으면 이런 공식이 나온다. 고난 받으면 불순종한 것이고, 축복받으면 순종한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자기 자신이나 다른 누군가가 돈을 잘 벌어서 집과 차를 사고, 자녀들은 명문 대학에 가거나 재벌 회사에 취직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은 게 자명하다는 듯이 말한다. 반면에 돈을 적게 벌어서 집도 없고, 자녀들은 지방 대학에 가거나 작은 회사에 다니면, 더 나아가 그 가족에게 이러저러한 아픔이 있으면, 뒤에서 수군덕거린다.

"주일을 안 지켜서 그런 거야. 기도를 안 해서 그래. 십일조를 도둑질해서 그래." 많은 신자가 앨리바스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믿고 있다.

앨리바스의 말이 신명기에 입각한 선교가 아니라 신명기를 빙자한 비난이 된 것은 바로 위와 같은 이치에서다. 
(p76-77)

그의 신관에는 결정적 오류가 있다. 앨리바스의 하나님은 인과응보, 권선징악의 틀을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하나님이시다. 이런 하나님은 한편으로 너무 쪼잔하다. 죄짓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벌을 주시는 하나님, 조금만 잘하면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희희낙락하며 상주시는 하나님은 마냥 좋지만은 않다. 그런 하나님이 내가 믿는 하나님이라면, 나는 지금 없다.
...
하나님이 제정하신 법칙들이지만, 그분은 그것들에 제약받지 않으신다. 그분 스스로 자신을 제한하여 그 법들을 지키신다. 하나님에게서 그 법이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 법이 역으로 하나님과 동일시되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법이지만, 하나님은 아니다. 하나님이 그 법을 만드신 것은 진리이지만, 그 법을 자유롭게 운용할 여지조차 없고 그럴 능력도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을 분노케 하는 일이다.

그래서 폭풍 가운데 등장하신 하나님은 "내가 내 뜻대로 하는데, 네가 왜 큰 소리냐? 너는 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신다. 욥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앨리바스와 두 친구들에게도 공히 적용된다. 

예측 가능한 하나님, 내 예쌍대로 움직이시는 하나님은 애당초 하나님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을 고작 그런 수준으로 격하시키니까 하나님이 최종적으로 욥의 손을 들어 주셨다. (p78-79)

이 책은 욥의 입장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욥 처럼 끝까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요. 불만을 터뜨리던 목소리를 높이던 말이죠!"

 

그리고 욥의 친구들의 입장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욥의 기도와 같은 기도를 하는 이들에게 정색하고 달려들지 말라고.. 울고 하소연 하는 이들에게 그 처음 방문 목적처럼 단지 위로가 되어주라고 말이죠.

 

고난을 겪는 이들이 한번쯤은 보게 되는 성경 '욥기' 그 성경을 더 잘 이해하고 그래서 욥기를 통해 전해지는 메시지를 더 잘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책 '욥, 까닭을 묻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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