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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집사 어디가~ 시즌2

[시즌2 #50] 사춘기 아이들 참아주기?

by 현명소명아빠 2022. 3. 29.

김집사 어디가 시즌2 #50
사춘기 아이들 참아주기?

김집사네 아이들은 중3, 중1

한창 깊고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사춘기의 터널을 지나는 중입니다.

 

아마 김집사처럼 사춘기 자녀를 두신 분들이라면 이 한 줄의 글에 벌써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고 계실 것이고, 아직 푸릇푸릇한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의 자녀를 두신 분들이라면... 굳이 미리 알고 미리 스트레스받으실 필요 없는 미래이니 꼭 읽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ㅎ (알고도 막을 수 없다면.. 미리 스트레스 받으실 필요는 없으실 거 같아서요 ㅎㅎ)


김집사네 첫째 아이는 원래 내성적이었습니다. 중1즈음부터 밖에서의 이미지는 말수가 없고,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니고, 뭐하고 사는지 도통 알 수 없게 방에 콕 박혀 사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생겼고, 그로 인해 학교 다니는 것조차 매우 힘들어하게 되었습니다.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치료하려고 약을 알아보고, 식단을 바꿔보고.. 여러모로 애써보았지만 딱히 차도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아들도 스스로 극복해 보고자 운동법을 찾아서 해보거나, 김집사에게 함께 나가 달라 부탁해서 함께 농구를 하러 나가곤 했지만.. 결국 그자리에 맴돌았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최근 축농증이 급성으로 심해져서 급기야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는 사태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둘째 아이는 첫째와 다르게 활달하고 활발한 성격이고, 밖에서는 리더십있게 두각을 나타내었지만.. 집에서는 두 얼굴의 사나이(?)가 되어 사사건건 감정으로 대립하고, 화를 내고, 정돈되지 않은 생활 습관과 식습관을 보이고, 그 결과로 겨우 잠잠해졌던 아토피가 다시 재발하는 등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지요. 방정리는 어찌나 안되는지... 김집사는 마음을 다스릴 자신이 없을 땐 딸아이 방문을 아예 열지를 않습니다. 물론 함부러 열었다간 비명에 가까운 호통이 날아오지요.

 

이 몇줄의 글로 약 2년간의 어려움을 다 담을 수는 없겠지만... 김집사와 아내 장집사는 무던히고 속 끓는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김집사와 장집사만 이 맘고생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한 듯이...


그런 무겁고 비참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예배시간에 예배를 여는 찬양 중에도,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에도, 그리고 말씀을 듣고 찬양을 부를 때에도 김집사의 마음은 많이도 우울했습니다. 더 정확히는 슬펐습니다. 아이들 생각에 속상함과 슬픔이 교차하여 마음이 많이 무거웠습니다. 그런 느낌 아시나요? 내 주변의 사람들은 다 함께 박수를 치며 찬양을 부르는데... 정작 나는 입도 뗄 수 없는 상황임을 발견할 때의 그 기분 말이죠.

 

그날은 그런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설교 말씀을 듣는 중 김집사의 귀로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마음의 근심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맞닥뜨렸을 대 찾아옵니다."

 

그 설교를 들으며 생각해보니, 김집사에게 있어 '아이들 문제'는 이 두 가지가 종합된 경우였습니다. 아이들의 내일을 긍정적으로 꿈꾸는 것은 엄두도 안나는 일인 거 같은데,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현재의 변화 또한 요연해 보였으니까요.

아이들을 달래도 보고, 혼내도 보고, 설득도 해보고, 설명도 해보았지만... 통하지 않았던... 그런 비참함이 매일, 매주 반복되고 있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해답을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없다는 것을 김집사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는 다른 곳에서는 소망의 근거를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상태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볼세라 조용히 눈물을 훔치며 

 

"나를 만나 주셨던 주님께서 우리 아이들도 만나주세요."라고 조용히 기도하는 것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마지막 찬양을 부르며 그렇게 기도하는데, 성령님께서 문득 그런 마음을 주시는 거 같았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야. 내가 너를 더 처참하고 비참한 상태에서도 만나준 것이 기억나지 않니?
너의 그때 상태가 지금 너의 아이들의 상태보다 정말 더 낫다고 생각하니?
너와 나만이 아는 당시 너의 그 비참함을 지금 너의 아이들의 상태와 비교할 수 있겠니?
그런데도 내가 너를 만났고, 너를 변화시켰고, 너와 여기까지 함께 와주었단다.
나를 좀 더 믿어보지 않을래?"

 

김집사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가장 비참했던 그 모습. 오직 하나님과 김집사만 아는 그때를 떠올리니... 지금 아이들의 모습과는 비교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아이들의 불퉁거리는 모습만이 보였던 김집사의 눈에... 아이들이 가진 장점들과 좋은 면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고뇌와 힘들어함이 조금은 더 가깝게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그 아이들도 나름의 삶의 무게를 견디고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했지만... 사실 김집사는 매일 아침 여전히 아이들과 씨름합니다. 퇴근하고 나서도 여전히 아이들과 투닥거립니다.

 

다만, 조금의 변화라면... 소리를 훨씬 덜 지릅니다. 불퉁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에도 전달할 내용만을 무심한 듯 툭 던지는 것이 아주 조금 더 쉬워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작은 변화만으로도... 김집사는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듯합니다.

 

 

아내 장집사가 그런 얘길 한 적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굳이 아이들을 통해 이런 일을 행하실까?"

 

그러면서 장집사가 생각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동료나 친구라면 연을 끊으면 되고, 회사나 직장이라면 그만두면 되고, 부모라 할지라도 관계가 소원해 지거나 뜸해지면 그나마 피할 수 있지만... 자식은 그럴 수 없으니까...

 

편법도 피해 가는 길도 없기 때문에 그러셨지 않았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공감이 되시나요?

 

우리를 만지시기 위해.. 피해 갈 수 없는 길로 인도하셨다고 힘겹게 인정하고 나니.. 정말 그랬습니다. 우리가 성화의 과정을 지나기 위해서 절대 피하가지 못할 길로 인도하심으로 고통스럽지만 필요한 그 시간을 보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혼란의 시간이 아이들에게도 '자라나고,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으로 사용되리라 믿습니다.

 

모든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님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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