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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도서 - 세상을 알자!/소설이 아니어도 좋은걸~

장면들 | The Scenes / 손석희 / 창비

by 현명소명아빠 2022. 1. 29.
장면들 | The Scenes -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
손석희 / 창비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21287538

 

장면들

“뉴스가 나가는 동안,세상은 이미 폭발하고 있었다”대한민국 대표 언론인 손석희한국사회를 뒤흔든 사건들의 중심에서 그가 직접 하고 싶었던 말들손석희가 드디어 독자를 만난다. JTBC 「뉴

book.naver.com

 

이 책은 저널리스트로서 그리고 현대사에 가장 격정적인 장면 중 하나로 기억되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건'과 지금까지도 가장 큰 사회 이슈 키워드로 남아 있는 '미투 운동' 등의 순간들을 JTBC 뉴스 앵커로서, 사장으로서, 한 명의 저널리스트로서 바라본 모습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더 다양한 내용들이 담겨 있는 책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세월호 사건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까지 이어지는 그 긴박한 과정에 대한 몰입도를 선사하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세월호 사건을 대하는 그와 그의 뉴스룸 팀의 자세 그리고 많은 외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곳을 지키려 했던 이들의 이야기가 눈물겨웠습니다. 그리고 일명 '최순실 태블릿 PC'를 발견하게 되는 그 우연의 순간과 그 태블릿PC의 내용이 세상에 뿌려지기까지의 그 긴박감은 어지간한 스릴러 소설보다 더 심장을 뛰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몰입감과 긴박감을 느끼는 데에는 의외로 손석희님의 약간은 냉담하고 무덤덤한 반응과 자세가 더 큰 몫을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이 이야기를 저처럼 흥분 잘하는 사람이 마구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했다면 아마도 그 내용들이 제 감정에 파묻혀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을 거 같습니다. 

10시 30분에 두 사람은 이제는 아무도 없는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들어서자마자 김필준 기자의 눈길을 끈 것은 사무실 안에 덩그러니 남겨진 사무용 책상이었다. 왜 그들은 그 책상만을 남겨주고 떠났을까? 아마도 급히 떠나는 바람에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떠날 때 서랍 안을 다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 서랍 안에 바로 태블릿PC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국정농단의 스모킹건은 JTBC의 신참 기자 손에 의해 세상으로 나왔다. (p102)

보는 눈 많고, 듣는 귀도 넘쳐나니 언제든 시빗거리가 있으면 엄청나게 큰 반발로 우리를 덮쳐올 것입니다. 게다가 금주 들어 내놓고 있는 단독보도들은 사람들을 속 시원하게 하는 면도 있지만 동시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자괴감에 빠지게도 하는 내용들 입니다. 우리는 본의 아니게 사람들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상실감을 던져주고 있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태도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p116)

 

그리고 마침내 헌법재판소에서 결정문을 읽는 그 순간에 대한 묘사가 나올 땐, 저도 모르게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함께 마음 졸여가며 뉴스를 함께 보았던 그 때가 회상되었습니다. "이러다 탄핵 안되는 거 아니야?"라고 서로를 불안 섞인 눈길과 불안에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던 그 순간 말이죠.

 

그러나 그 순간.. 어찌보면 승리의 단맛을 느꼈다 하더라도 아무도 손가락질하지 못했을 그 순간에도 그는 흥분으로 자기가 서있어야 할 자리를 잊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깊은 절망을 느꼈을 시민들에 대한 위로와 추위와 싸워가며 촛불로 자리를 지켰던 시민들에게 그 공을 돌리는 그의 '앵커 브리핑'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저희는 뉴스와 절망을 함께 전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민들이 느낀 이런 자괴감은 대통령 한 사람이 느꼈다는 자괴감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참담한 것이어서 과연 이런 상처는 아물 수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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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진실이란 불편함을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얻을 수 있는 명제였고, 그 불편함을 가장 앞장서서 마주하는 것이 이 전대미문의 시국을 걸어가는 시민들이 겪어내야 할 '진실의 역설'이었을 것입니다. (p148)

앞선 사건이 언론과 국민이 부패한 권력과 싸우는 싸움이었다면, 뒤이어 나오는 '미투 사건'은 또다른 성격이었습니다. 좀 더 사회 깊이 뿌리 박혀있던 문제를 건드리는 것이었고, 앞선 사건보다 더 다양한 곳에서 반발과 공격이 튀어나온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손석희 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앞선 사건은 '용기'만 있으면 되었지만, 미투는 용기만 가지고는 안 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일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미투 보도 자체에 대한 회의론도 내부에서 있다는 소리 역시 들려왔다. '손 사장이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서지현 검사를 만났을 때부터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정권에 대한 비판이나, 대형참사에 대한 어젠다 지키기는 차라리 단순한 것일 수 있었다. 거기엔 용기만 있으면 되었다.

미투는 복잡했다. 젠더 문제였기 때문이다. 용기만 가지고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때로는 도가 지나친 공격들에 모두 대응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가해자의 가족들은 또 다른 피해자이기도 했다. 가해자가 대개 알려진 사람이다보니 아무 죄도 없는 그 가족들이 겪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p198)

 

서지현 검사 사건과 김지은씨 사건(사실 이렇게 표현하고 있지만, 이런 표현이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사건 이름이 피해자의 이름으로 정해져서 계속 거론되어야 한다는 것 말이죠)을 다루며, 어떤 마음의 무거움을 안고 그 사건을 풀어내었을지가 조금은 짐작이 되었습니다.


손석희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분명히 있으며, 과와 공 또한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 주위에도 국정농단 사건 때 JTBC와 손석희 님의 팬이었던 이들이 그 후 극심한 실망감을 드러내며 등을 돌리신 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혼란하고 아파했으며 그럼에도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는 언론사가 거의 없던 그 시절... 그것을 못견디던 많은 방송사의 언론인들의 파업으로 맞서던 그때... 그 시절을 손석희라는 언론인이 있어 그래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 당시를 회상할 수 있는 의미로서도, 한 굳건한 언론인의 모습을 발견하는 의미로서도 이 책은 충분히 권장할 가치가 있을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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