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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도서 - 하나님을 알자!/믿고 보는 저자 - 신앙편

[책 요약] 팀 켈러의 부활을 입다 / 팀 켈러 / 두란노 - Part3

by 현명소명아빠 2021. 11. 8.
팀 켈러의 부활을 입다 - 인생 단 하나의 희망, 하나님의 위대한 반전
팀 켈러 / 두란노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18336095

 

부활을 입다(팀 켈러의)

2021년 3월, 미국 출간 즉시아마존 베스트셀러!“쓰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을 가장 많이 느낀 책이다.”췌장암 투병 중 집필한 팀 켈러의 진솔하고 힘 있는 신앙고백불안의 시대, 일상

book.naver.com

이 책에서 말하는 부활의 마지막 의미를 살펴보며 이 책 요약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잎서 내용에서 예수님의 부활이 단순히 과거의 한 상징적인 사건이 아닌, 훼손된 하나님 나라의 회복,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누리게 하는 것의 의미와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에 대해 단절되었던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죽음을 통해 오심으로 그 영광과 임재를 누리게 하신 사건적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전 앞서 2가지 내용 즉 부활의 표면적 의미만이 아닌 내재적 의미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참 감사하고 좋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부분이 바로 오늘 다룰 내용이었습니다.

 

모든 가르침이 가르침으로 끝나선 곤란합니다. 뜬구름 잡는 얘기가 되어 버리거나, 일부 계층의 전유물로써 부활이 논의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의미는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삶을 바꾸고 변화시킬 때 그 의미가 온전히 완성된다고 생각되고, 그런 의미에서 오늘 다룰 내용이 참 중요하고 의미 있다 생각합니다.


'영적 부활'이란 우리가 이 땅에 있으면서도 어떤 의미에서 하늘에 산다는 뜻입니다. 현재 속에서 미래를 산다는 뜻이다. (p207)

기독교 신앙은 여러 역사적 실재와 진리에 입각해 있지만,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한 그분과의 영적 연합이기도 하다. (p208)

올바른 교리를 반드시 수호해야 하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마음의 정서적 습성, 성품의 의지적 실천까지도 그 진리로 빚어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p214)

부활은 사전적 의미로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기독교 신앙에서는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표현합니다. 그 의미는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은 그리스도인은 '옛 본성을 죽이고 위의 것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추구해야 할 거듭남의 삶에 대한 인지도, 필요성도, 심지어는 방법도 모른 체 지식적으로만 "그래 새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지!"라고 할 때가 많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니면 주일날 꼬박꼬박 교회에 가는 '행위'만으로 할 도리 다했다고 스스로 위안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에서는 거듭남의 삶을 위해서는 '버리거나 죽여야 할 것'이 있고, '활성화하거나 강화해야 할 것이'있으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없이는 구원이 불가능하듯, 우리도 죽음과 부활을 꾸준히 실천하지 않고는 그 구원이 우리를 변화시켜 삶의 구석구석에까지 파고들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듭남의 실천을 위한 방법과 단계를 알아보겠습니다.

 

첫째로, "죄를 죽이는" 하향 단계가 있습니다.

 

'에피투미아'... 성경에서는 '유혹의 욕심', '악한 정욕', '우상 숭배'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인간이 늘 땅의 것에 마음을 두고, 그것을 의지하고, 그 위에 삶을 세우고, 하나님 대신 거기서 정체감과 의미와 구원과 사랑을 얻으려 하는 바로 그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두려움, 분노, 충동, 중독 등 통제하기 힘든 과욕을 만들어 내어 우리를 지배합니다. 그리고 "죄를 죽이는 단계"에서는 우리 마음을 거기서 끌어내서, 그것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거나 아예 없애려는 노력을 의미합니다.


둘째로, "마음을 두는" 상향 단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위의 것"과 특히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높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 사랑과 의미에 대한 추구를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끊임없이 다른 것으로부터 얻어내기 위한 추구를 없애진 못하지만, 한층 더 위의 사랑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말씀과 복음이 계시된 그리스도를 묵상함으로써 마음이 그분을 향한 사랑으로 불타올라야만 우리는 우상의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이 두 단계는 서로 긴밀히 맞물려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서 권력과 인정과 위안과 통제력을 얻으려는 과도한 애착을 제거하려면 그 보다 위대하고 아름다운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가 받아들여졌다는 구원의 확신과 지식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가 죄인임을 스스로 인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참 슬픈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늬만 성도'에게는 마귀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 인지하고 위의 노력을 하려고 애쓰는 이들에게 잘못된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그들을 좌절시킵니다.

 

이런 영적 성장 과정에 대한 여러 오해가 있습니다.

 

첫 번째 오해는 죄를 죽이는 일이 잘못된 행동을 '그냥 거부' 하거나 그저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라고 1차원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 죄의 형태는 다 다를 것입니다. 이 오해의 의미는 우리가 저지른 죄를 회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죄의 뿌리와 구조를 파악해서 약화시키는 것, 그래서 자신의 연약한 부분으로 인한 특정한 죄의 습관이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째 오해는 앞서 말한 두 번째 단계인 '마음을 두는' 상향 단계에 대한 잘못된 인식입니다. 

 

'마음을 두는' 것을 단순히 바르게 살려고 열심히 애를 쓰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두는 것' / '위의 것을 생각'하는 것은 심령의 가장 깊은 갈망을 예수님께 두는 것이며, 예수님이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분 쪽으로 기울게 하실 때까지 그분의 영광스러운 인격과 행적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는 단계가 아니라,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묵상함으로써, 그분이 우리 마음을 바꾸시고 더는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장악하려 하는 것들에 대해 "너는 내 생명이 아니다. 그리스도만이 내 생명이시다. 너는 좋은 것이지만 생명과 기쁨을 얻는 데 네가 꼭 필요하지 않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내 생명과 기쁨이시다"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가장 중요하고 큰 가치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치르신 대가인 십자가를 보며, 다른 것에 눈 돌릴 수 없는 그 큰 사랑을 느낍니다. 죄로 인한 두려움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가 아닌 '하나님과 나를 멀어지게 만드는' 죄 자체를 미워하게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책입니다. 부활에 합당한 거듭남의 삶에 대해 우리의 노력을 무시하지 않지만, 그 또한 우리의 노력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단언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문을 여신 것도, 그 구원의 길을 걸어갈 힘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의 참된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우리 마음의 우상과 조리된 뿌리들을 제거하는 것도 결국 '은혜'입니다.

 

우리는 다만 '은혜'를 힘입어 거듭남을 추구하고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나고 성화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부활의 마지막 의미입니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팀 켈러의 부활을 입다'에 대한 포스팅을 마칩니다. 부디 이 부족한 글을 통해 성도들에게 부활의 참 의미 회복되고, 이 책을 읽고 부활의 참 의미에 대해 더 알아가고픈 마음이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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