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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도서 - 하나님을 알자!/성경상 중요 개념을 짚어봅시다!

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 / 아더 핑크 / 요단 - #2

by 현명소명아빠 2021. 2. 15.
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 #2
아더 핑크 / 요단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690856

 

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주권』은 철저한 칼빈주의자였던 전도자요 성경학자였던 아더 W. 핑크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쓴 책이다. ‘하나님의 주권이란 무엇인가?’에서부터 하나님의 주권이 창조와 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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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7장까지의 주요 내용인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부분을 #1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8장부터 12장에서 주된 내용인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역할/자유의지'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와 '인간의 자유의지'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개념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저도 그랬고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으로 역사된다면, 그 가운데서 인간이 설자리가 무엇일까? 란 의문이 들었고, 반대로 인간의 자유의지가 강조된다면.. 하나님의 주권이 축소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자도 같은 물음을 분명히 인지했던 것 같으며, 복음서의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 장면에서 그 단초를 얻는 것을 봅니다.

마태복음 4장 1절은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라고 말한다. 그러나 마가복음 1장 12~13절은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라고 말한다. 알미니안주의의 의지 개념은 두 구절을 절대로 조화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실제로, 두 구절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몰아내셨다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강제적인 동기나 강력한 자극, 곧 저항이나 거부가 불가능한 동기나 자극을 통해 광야로 나가셨음을 암시한다. 그리스도께서 이끌리셨다는 말은 그분이 자유롭게 광야로 나가셨음을 암시한다. 둘을 함께 놓고 보면,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몰아내셨고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에 자발적으로 순종하셨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인간 의지의 자유와 하나님의 은혜의 효력이 결합했다.                              (p207)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필요합니다. 바로 인간은 자유의지가 분명히 있지만, 죄악 된 인간의 자유의지 속에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선택하는 옵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죄인은 선이나 악 중 하나를 행할 자유가 없다. 내면의 악한 마음은 항상 죄인을 죄로 기울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내가 책을 한 권 들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내가 그 책을 놓으면, 어떻게 되는가? 떨어진다. 어느 방향으로 떨어지는가? 아래쪽으로 떨어진다. 언제나 아래쪽으로 떨어진다. 왜 그런가? 중력의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제 내가 이 책을 1미터 높이에 두고 싶어 한다고 생각해 보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그 책을 들어 올려야 한다. 

타락한 인간도 하나님과 이런 관계이다.                                                                          (p211-212)

 

그래서 이 책에서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거나 거부하는 행위는 인간의 의지력에 속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명시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죄인으로 자각하지도, 구원 받아야 하는 존재로 인지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죄악아래 있는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는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상태를 성경에서는 "죄의 종"이란 표현으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난해했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가장 어렵게 다가왔던 개념을 함께 살펴보려 하는데요. 바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입니다. 저자도 무려 4페이지를 할애하여, 이 두 개념을 접합하는 것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난제였는지를 설명하고 있네요. (p226 - 229)

 

아래는 이 두 개념을 접합하는데 있어 고려되는 어려움을 나열한 내용입니다.

첫째, 하나님이 자기 능력을 인간에게 행사하여 인간이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막으시고 대신에 하기 싫은 일을 하도록 몰아 대면서도 인간의 책임을 보존하시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

둘째, 죄인에게 그가 할 능력이 없는 일을 해야 하는 책임을 부여하고, 할 능력이 없는 일을 하지 못했다고 그를 정죄하는 것이 어떻게 정당할 수 있는가?

셋째, 인간이 죄를 짓도록 하나님이 작정하셨다면, 그 죄에 대해 인간에게 책임을 묻고 인간에게 유죄 판견을 내리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

넷째, 하나님이 죄인을 정죄(심판)하기로 예정하셨다면, 그리스도를 영접할 책임을 죄인에게 돌리고, 그리스도를 거부했다고 그에게 영벌을 내리는 게 어떻게 가능한가?

이 질문들에 대해 저자가 하나하나 답변을 달아놓았습니다. 함께 살펴보시죠.

 

첫째 질문에 대한 핵심은, 하나님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침해할 경우, 인간은 기계와 다를바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침해해선 안된다라는 것을 사람들이 보편 진리로 믿는 것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성경에서는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바꾸셨다고 적고 있고, 어떤 이들은(예를 들어 아담) 그들의 행동의 결과를 하나님께서 미리 아셨음이 분명하지만 막지 않으셨던 것도 보게 됩니다.

 

 여기엔 하나님의 어떤 의도가 있으셨고, 그 의도대로 어떤 이들의 삶과 생각에는 개입하셨고, 어떤 이들은 내버려 두셨음을 보게 됩니다.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하나님의 개입은 인간의 자유의 제한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심으로 인간 내면의 죄를 억제하시고, 육신의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게 막으심으로써 오히려 인간이 죄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끔 하셨습니다.

자유를 말하자면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을 선호한다. 이들은 아무 명령이나 통제도 받지 않고 자기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만이 진정한 자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최악의 속박이며 노예생활이다. 

진정한 자유란 원하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마땅히 살아야 하는 대로 사는 것이다.                             (p236)

 

둘째 질문에 대해서도 살펴보겠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살펴보려면 저자가 제시하는 2가지 개념에 대해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 같은데요. 바로 '자연적 무능력' vs '도덕적, 영적 무능력'에 대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 두가지 개념을 구분하지 못하면 이 둘째 질문에 대해 우리는 명확한 해답을 얻을 수 없을 거 같습니다.

 

간단하게 각각의 개념을 정의해보자면, 자연적 무능력은 인간의 행동이 자연현상이나 육체의 제한으로 인해 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하고, 도덕적 무능력의 경우, 인간이 범죄함에 대해 스스로 멈추지 못하는 모습이며, 영적 무능력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을 지칭합니다.

 

따라서 거듭나지 못한 인간은 자연적 능력은 갖고 있지만, 죄로 인해 도덕적, 영적 무능력인 상태에 있습니다. 

죄인의 무능력은 진정으로 갈망하고 실제로 행할 도덕적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앞서 제시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 죄인은 자연적 능력은 있으나 도덕적, 영적 무능력 때문에 고통당하며, 이 사실은 죄인의 책임을 보여준다. 인간의 마음이 부패했다고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책임이 파기되지는 않는다. 사실 그 반대다. 죄인의 도덕적 무능력은 죄인의 죄책을 증가시킬 뿐이다.                                    (p241)

본성적옐으로 인간은 자연적 능력은 있으나 도덕적, 영적 능력은 없다. 그러나 인간이 도덕적, 영적 능력이 없다고 인간의 책임이 면제되지는 않는다. 인간의 책임은 자연적 능력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
인간의 책임은 사리분별력(합리성)과 더불어 양심이라는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죄인이 책임 있는 피조물인 까닭은 이러한 자연적 능력들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죄인의 죄책이 확정되는 이유는 자신의 자연적 능력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p244)

 

셋째 질문은 우리가 흔히 가룟 유다의 예를 들어, 그는 '필요악'이었고, 그렇기에 그를 죄인 취급해서는 안된다?라는 질문으로도 바꿔 물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합니다. 가룟유다는 '그의 악한 의도'를 가지고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성취하려는 열망에서 그런 것이 아님을 우리는 성경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악한 의도를 갖고 행동했고 그렇기에 그는 유죄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예수님이 팔리도록 작정해 놓고 이것을 실행에 옮기려고 유다라는 선한 사람을 택해 그 마음에 악한 갈망을 집어넣고 그가 끔찍한 행동을 취하도록 강요하신 게 아니다. 성경은 이런 식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에 하나님은 이 행동을 작정하셨고, 이 행위를 실행에 옮길 사람을 선택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이 행동을 실행에 옮기도록 그를 악하게 하지는 않으셨다.
...
유다가 악한 행동을 취하고 자신의 악함을 드러낼 때, 하나님은 단지 그의 행동을 이끄셨을 뿐이며, 유다의 행동은 그의 악한 마음에 완벽하게 맞았으며 매우 악한 의도에서 나왔다.                                        (p247-248)

 

 

마지막 넷째 질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정된 심판에 대해 그리스도를 영접할 책임을 죄인에게 돌리고, 그 거부의 책임을 그에게 물어 영벌을 내리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란 부분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회개의 명령(복음)에 대해 믿음의 요청을 받은 것이며, 진정으로 회개하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받습니다. 즉 모든 죄인은 회개하고 믿을 책임을 부여받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길에 대해 성경을 통해 알려주셨고, 그 의미는 모든 인간은 그 성경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길을 알려주셨기에, 그것을 거부한다면 그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기준은 너무 높으니 그 기준을 인간의 수준으로 낮춰달라고 요구할 권리는 우리 인간에게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해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간절히 부르짖고 구해야 합니다. 그럴 의무가 인간에게 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을 구해달라고 간절히 소리 질러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책임입니다. 


이 책에는 이외에도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일하신다면 우리의 기도와 전도는 무슨 의미인가? 와 같은 우리가 충분히 의문을 가질만한 부분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다만, 다 다루기엔 글이 너무 길어지는 부분도 있고, 앞서 큰 2개의 개념을 이해한다면 세부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는 저절로 따라온다고 믿기에 다 적지는 않았습니다.

 

분명 쉬운 개념은 아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이란 부분에 대해 바르게 이해할 의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지식과 이해가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우리의 신앙은 몇 가지의 질문에도 쉽게 쓰러지는 갈대와 같은 모습이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성도이시라면, 이 책을 한 번이 아닌, 여러번 정독하시길 권면합니다. 그리고 나의 신앙관과 대조해보며 잘못 알고, 잘못 믿어온 부분은 없는지 돌아보길 권면합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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