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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도서 - 하나님을 알자!/기도와 은사.. 어렵지만 알아야하는 주제

지렁이의 기도 / 김요한 / 새물결플러스 #2

by 현명소명아빠 2019. 10. 17.
  • Main category: 신앙도서 - 하나님을 알자!
  • Subcategory:  기도와 은사.. 어렵지만 알아야 하는 주제
  • 추천 대상:
    • 내 필요만을 아뢰는 기도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하고 싶으신 분
    • 세상 속에서 휘둘리는 힘없는 성도가 아닌, 은사를 통해 주의 군사로 살아가고 싶으신 분
    • 내 힘으로 하는 사역에 한계를 느낀 나머지 성령님의 도우심의 필요를 느끼시는 분
    • 기도의 대상이신 삼위 일체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가지고 기도로 나아가고 싶으신 분
    • 지성과 영성의 균형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

삼위일체의 교리만큼 중요하지만 난해한 교리가 있을까요?

그렇지만 "알라를 찾다가 예수를 만나다"와 같이 기독교와 뿌리가 같은 타 종교의 입장에서 기독교를 바라봤을때 가장 구분이 되는 중요한 교리적 차이를 하나를 꼽으라면 그것은 단연 "삼위일체"일 것입니다.

삼위일체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동일본질 혹은 같은 존재방식으로 실재하신다는 이야기다. 더 쉽게 표현하면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 세분이시며, 동시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니이 서로 다른 하나님이 아니라 동일(등)한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삼위일체 교리는 기독교를 여타의 종교와 확연히 구별해주는 가장 대표적인 표징과 같은 것이다. 가령 유대교나 이슬람교는 완고한 유일신론을, 힌두교 등은 범신론을, 그리스-로마 종교는 다신론을, 불교는 무신론을, 근대 계몽주의 이념은 이시론을 믿는다. 그렇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이 세 분인 동시에 하나닝심을 믿는다. 또는 같은(동일한) 하나님이 세 분으로 존재하심을 믿는다. 이 교리를 고백하면 기독교이고,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가 아니다.


사실 이책에서도 이렇게 언급이 되어 읽으면서 나름 충격이었지만, 아직도 충격에 비해 이해도가 크게 달라졌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렸을때 이 책에서 거론되는 삼위일체 관련 두가지 이단의 형태인 양태론과 삼신론(혹은 종속론)의 입장에서 삼위일체를 저에게 설명해 주셨던 분도 계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양태론과 삼신론에 대한 설명을 잠시 보시겠습니다.

- 양태론이란 한 하나님이 상황에 따라 여러 형태로 모습을 바꾸어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가령 물(액체), 수증기(기체), 얼음(고체)으로 성부와 성자 및 성령의 관계를 설명한다든지, 한 남자가 집에서는 아버지의 역할을, 회사에서는 사장 역할을, 교회에서는 장로 역할을 수행 한다는 식으로 삼위 일체를 풀어내려는 시도가 바로 양태론이란 이단이다. 양태론은 하나님이 세 분이 아니라 한 분이시라고 주장하기에 그릇되었다. (본문 p61)

이것의 근거로 마태복음 3장에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때 장면을 거론하고 있는데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나오실때 성령님께서 비둘기같이 임하셨고 하늘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이 있었지요. 아마 성경에 나타난 삼위일체의 가장 분명한 장면이 아닐까 합니다. 이어서 삼신론에 대해 보겠습니다.

- 이에 반하여 삼신론 혹은 종속론은 하나님이 세 분이시라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성부, 성자, 성령 세 분 하나님은 동일(등)한 하나님이 아니라 상호 위계질서가 뚜렷한 존재다. 성자나 성령 역시 하나님이시긴 하지만, 창조의 어느 시점에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만들어진 피조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성자와 성령은 성부께 종속된다.(본문 p62)

이 두가지 사례를 보면서 자칫 잘못된 가르침으로 빠질 수 있음을 경계함과 동시에 바른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얼마나 우리의 신앙을 든든히 서게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뒤이어 그렇다면 기독교 신앙에서 삼위일체 교리가 왜 중요한지 저자는 강조하며 기술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왜 기독교 신앙에 있어 삼위일체 교리가 중요한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삼위일체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의 구원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첫째, 하나님께서 삼위일체로 존재하지않는다면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완벽하게 일어날 수 없다. 주지하듯이 하나님은 초월적 존재이시기 때문에 유한한 피조물인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인간에게 먼저 계시해주셔야만 그때야 비로소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성경의 용례를 따라) 하나님과의 하나됨 곧 하나님과의 연합을 의미한다.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을 앎으로써 하나님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신적 생명에 참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다. 따라서 피조물인 인간이 구원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알려면, 하나님과 100% 똑같으신 분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려주셔야 한다. 만일 하나님과 99.999%가 똑같은 존재가 와서 하나님을 알려준다 해도 그것으로 인해 계시의 사건, 즉 하나님을 알게 되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과 매우 유사한 존재는 하나님 자신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 어렴풋하게밖에 못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없음으로써 결국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이처럼 성부 하나님과 성자(혹은 성령) 하나님이 100% 동일한 하나님이셔야 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둘째,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려면 세상보다 더 크신 존재여야 한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초월성이라고 한다. 동시에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려면 세상 안으로 들어오셔서 세상의 고난과 참상을 친히 체험하시고 구원의 손을 내미셔야 한다. 이것을 하나님의 내재성이라고 한다. 즉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세상을 초월한 동시에 내재하셔야 한다. 이러한 구원의 구도는 오직 삼위일체론을 통해서만 충족된다. 곧 성부 하나님께서는 저 우주밖에 초월해 계심으로써 우주를 능히 구원하실 수 있는 존재인 동시에,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서는 죄와 악과 불행이 가득한 세상에 오셔서(내재하셔서) 세상의 구원을 위해 일하는 존재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이 세상 밖에만 존재하는 일신론 혹은 이신론이나, 세상이 곧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범신론적 신관이 제시하는 신들은 실제로는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변적 존재들일 뿐이다.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세계를 초월한 동시에 내재하심으로써 세상을 구원하신다.

(본문 p63-65)

 

이어서 "페리코레시스"라는 용어를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페리코레시스적 순환을 통한 상호 침투, 내주, 환대를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전 이부분이 개인적으로 너무 좋습니다.

 

창세전.. 세상도 인간도 자연도 없던 그 시절에 하나님 한분만 덜렁(?) 계셔서 외롭게 계시다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창세 이전부터 삼위일체 하나님께선 서로 연합하셨고 함께 하셨고 서로안에서 하나의 모습을 이미 이루셨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관계를 가지고 계셨다는 점이 말이죠. 그리고 그 관계의 확장을 위해 세상을 만드셨고, 인간을 만드셨다는 사실이 저를 더 가치있게 여기게 되는 근거가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성경에는 "삼위일체"란 용어는 한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자는 성경에서 그 근거를 아래와 같이 찾아 기술합니다.

 

-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에베소서 3:14-19)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린도후서 13:13)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시며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요한계시록 1:4-5)

 

또한 성경은 인간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고 분명하게 천명한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

 

(본문 p66-67)

 

기도를 통해 우리는 이 아름다운 관계.. 페리코레시스적 삶과 관계 안으로 참여하고 함께 할 수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기뻐하고 송축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성령 안에서, 성자를 힘입어 성부하나님께 나아감으로써 실행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삼위일체적 삶에 참여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본문에서 저는 "아버지 하나님"에서 "아빠 하나님"으로 호칭을 틀 수 있었습니다.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더 깊은 사귐으로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3에서 이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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