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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도서 - 세상을 알자!/재미는 좀 없지만 필독!

파더쇼크 / EBS다큐프라임 / 쌤앤파커스 #1

by 현명소명아빠 2019. 9. 27.
  • Main category: 일반도서 - 세상을 알자!
  • Subcategory:  재미는 좀 없지만 필독!
  • 추천 대상:
    • 잘은 모르겠지만 내 아이에게 더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 분!

2013년이 이 책을 읽었고 책 뒤에 별 5개 한 줄 후기엔 "의욕만으론 불가능하다. 알아야 '제대로' 잘할 수 있다"라고 적은 책입니다.

지금이야 큰애가 초등학교 6학년, 작은애가 초등학교 4학년이라 이제는 제법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얘기할 줄도 알고, 나름 반항도 하는 시기라 큰 고민이 없었지만.. 2013년만 하더라도 한창 양육에 대해 고민이 많던 시기였습니다.

 

아이들이 갓난아기 때는 몸은 정말 힘들었지만, 마음은 편했던 것 같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그때그때가 분명했거든요. 배고프면 먹이고, 싸면 갈고 씻기고, 졸려하면 재우면 됐지요.

그런데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짧고 간단하지만 자신의 요구를 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몸은 조금 편해졌지만 마음고생이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제 아버지만 보더라도 제가 어릴 땐 참 엄하셨습니다. 맞기도 많이 맞았고요. 지금의 아버지들의 모습은 그 당시 부모님들께는 정말 발견하기 힘든 모습이었지요.

 

그런데 세월이 변했습니다.

 

이제는 예전 아버지 세대의 모습으로 양육에 임한다면 지탄의 대상이 되어 버립니다. 시대착오적 아버지라는 꼬리표를 떼기가 어렵습니다. 

 

보고 배운 것은 엄한 아버지, 무뚝뚝하고 소통이 쉽지 않은 아버지의 모습인데.. 요구되는 모습은 그와 정반대의 모습을 요구하니 많이도 답답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답답함을 가지던 중 우연히 보게 된 EBS 다큐에서 아버지들에 대한 내용이 다루어지는 것을 알고 그 내용이 담긴 책을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종류의 책이 범하기 쉬운 오류는 편협되고 한정된 경험에서 오는 일반화의 오류일 것입니다. 쉬운 말로 내가 경험한 상황을 다른 사람에게 무조건 옳다고 강요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이 책이 신뢰가 가는 이유는 단일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책이 아니라 여러 실험과 광범위한 사례를 종합한 결과라는 것이겠지요.

 

이 책은 총 4부로 나뉘어서 진행한 다큐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는데요.  다큐보다 책을 선호하는 이유는 다큐는 생각할 시간을 갖기 쉽지 않은 반면 책은 중간중간 느끼는 바가 있을 때 충분히 책장을 덮고 생각을 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습니다.

 

1부는 "잊힌 양육자 "란 제목이며, 일을 해서 가족을 부양한다는 전통적 가치관의 아버지상에 익숙한 현대의 아버지들이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대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에 대해 언급하면서 아버지의 양육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 예를 잘 볼 수 있는 내용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 패퀘트 교수는 "엄마와 아빠가 아이를 키울 때 서로 다른 역할을 할수록 아이에게 이익이 크다. 아빠가 아이의 모험심을 자극해주면 아이는 위험을 극복하고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라고 말했다.

 

또한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신체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자기 힘을 마음껏 행사하는 동시에 '힘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영욱의 심리학자 찰리 루이스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아이와 아빠의 요란한 신체놀이는 아이가 아빠를 힘으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한계를 배우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놀이는 아이가 어떤 경계를 인지하게 만들고, 그 밖으로 나가 탐험할 수 도 있게 한다. 아빠는 아이가 안전한 범위 내에서 그 한계를 조금씩 밖으로 확장하도록 유도하곤 하는데, 이건 엄마들이 잘 못하는 영역이다." (본문 p46-47)

 

 

이런 행동적,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는 부분뿐 아니라 언어의 영역에 대해서도 엄마와 아빠의 영향력은 확연히 구분되는데요, 그에 대한 예도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 아버지가 아이의 어휘력에 도움을 주는 방식은 엄마와 확연히 구분된다. 아버지들은 엄마들처럼 유아어를 쓰는 대신 성인의 언어를 구사한다. 찰리 루이스 교수는 아버지 언어의 특이한 점으로 '아이들에게 익숙하지 안ㅇ느 단어를 쓴다'는 사실을 들었다. 엄마들은 아이들이 아는 어휘를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반면 아버지들은 아이가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를 거리낌 없이 쓴다. 아버지들은 긴 단어를 사용할 뿐 아니라 위트나 풍자가 들어가는 복잡한 언어를 구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는 아이를 배려하지 않는 이런 행동이 아이의 언어발달에 도움을 준다는 것 (본문 p47)

 

 

이렇게 아빠를 통한 양육의 고유한 영역과 그에 대한 차별화된 영향이 분명히 보인다면 아빠들 그리고 이 사실을 먼저 접한 엄마들은 마음이 급할지도 모릅니다. 혹은 시간이 없거나 바쁜 직장생활로 인해 아이들과 함께 해준 시간이 너무 없음에 대해 성급히 후회만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의욕을 가지고 시작하려 해도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막막한 분들도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그랬던 것 같이 말이죠.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저희 부부의 침대로 쳐들어와서 하루를 엄마나 아빠 중 한 명과 같이 잡니다.(당연히 둘째인 4학년 딸도요)

지금도 "차량이 도착했습니다" 알림이 들리면 하던 것을 멈추고 후다닥 숨바꼭질 모드로 전환하여 숨고 "아빠 찾아보세요"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못 찾는 척해주다가 '간지럼 괴물'로 마무리 짓곤 하지요.

 

길을 갈 때 아직 손잡고 다니는 아들과 딸.

서로 뽀뽀해 주는 것에 서로 어색해하지 않는 관계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서로 얘기하고 들어주는 관계

 

처음부터 이렇게 잘 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의욕만큼이나 지식이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고 마냥 다 받아주고 아이들에게 쩔쩔매는 아빠의 모습을 보이라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그것에 대해 본문에선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 손석한 연세 신경정신과 원장은 어느 매체에서 요즘 아빠 중 상당수는 프렌디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엄마는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자연스레 잔소리가 많아지죠. 반면 (가끔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아빠는 자녀의 잘못을 무조건 덮어주려고만 합니다. 그건 '친근함'이 아니라 '직무유기'입니다. 아빠 조 자녀의 잘못된 행동을 보면 상황 중재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합니다 (본문 p64)

 

이런 잘못된 모습에 대해 이 책에서 느 '규율의 부재'로 적고 있습니다.

주눅들며 자라는 것도 올바르지 않지만, 버릇없이 크는 것 또한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경계선, 제한선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마냥 어리지만 않다면 경계선을 정하는 데 있어 아이가 같이 참여하여 결정을 함께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것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방 정리를 잘 못하는 아이에게 훈육을 함에 있어

 

"1. 무조건 혼을 낸다"도 해보았지만 모든 잔소리가 그렇듯 반복이 지속되더군요.

 

"2.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마냥 기다려준다"도 해보았지만 어느 정도 큰 아이들이거나 아니면 상호 대화가 익숙한 가정이 아닌 이상 상황은 나아지지 않은 체 부모님 성격만 버리는 경우가 많고요.

 

"3. 부모가 일방적으로 경계선을 긋고 통보한다"도 해보았지만 역시나 잘 지켜지지는 않습니다.

저희 집에서 마지막으로 한 방법은 그 경계선을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는 것이었지요.

 

방을 왜 잘 치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얘기해보고, 아이가 왜 잘 못 치우고 있는지에 대해 아이의 말도 들어본 후 "3번 방에 대해 지적이 나올 경우 한 가지 자유를 제한한다."는 경계선을 함께 설정하였습니다.

 

처음에야 역시나 반복되곤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참여한 룰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지키려 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엄마만 이런 제한성 설정에 관여한다면 그 효율은 물론이고 제한성 설정 자체가 매우 힘들어 잔소리의 악순환만 더 심화될 뿐이겠지요.

 

또 하나 짚고 가야 할 부분은 육아에 관여하는 아빠들이 조금은 받아주다 갑자기 전통적인 아버지상으로 돌변하는 것 또한 좋지 않습니다. 예측이 어려운 갑작스러운 분노는 아이들의 정서발달에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언제 터질지 모를 감정의 폭발에 대해 늘 조마조마해하는 아이들에게 정서적 안정을 주기가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아이의 입장에서도 마냥 풀어진 상황에서의 자유가 더 좋을 것 같지만 많은 연구 결과에서 한계가 분명한 상태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는 것으로 나온 만큼 부모님 아이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겠지요?

그리고 이런 방향으로 나아감에 있어 아버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 많은 곳에서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되시는 분은 프랑스 가정교육에 대한 동영상 등을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글을 읽거나, 강연을 듣거나 하신 많은 '준비되지 않고 훈련되지 않은' 아버지들이 겪는 문제가 있는데, 그것을 이 책에서는 "뒤늦은 아빠 노릇은 사춘기의 쇼크를 부른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말을 그나마 듣고 말로 그리고 때로는 훈육이 먹히는 시기는 그나마 괜찮지만 아이들이 중학생 이상이 되고, 사춘기 반항이 시작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일단, 아빠가 육아에 함께 하지 않는 집이라면, 엄마 혼자서 아이들 생활을 지도할 텐데.. 이때 즈음이면 아이들을 엄마 혼자서는 지도가 어렵게 되어 버립니다. 힘으로도 말로도 말이죠.

그제야 엄마들이 아빠의 등을 떠밀며 뭐라도 해보라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아빠는 어떻게 할지를 모르고, 감정적으로 날카롭게만 대립하다 끝내 큰소리를 내는 것으로 종결된다는 것이죠.

 

아이들도 '차라리 그냥 내버려 두셨으면 좋겠어요', '왜 이제 와서 저러는지 모르겠어요' 같은 반응들로 오히려 아빠의 개입을 불편한 것으로만 여기게 되지요.

 

다큐에서는 모처럼 자녀교육에 대한 강의를 듣고 온 아빠가 아이들을 불러 모아 이렇게 얘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야! 할 말 있으면 해 봐!"

 

그리고 아이들이 눈치만 보며 말이 없으니

 

"할 말들 있을 거 아냐 빨리 말해봐"

하며 다그칩니다.

 

그리고 간신히 나온 아이들의 의견은 묵살과 동시에 잔소리 거리로 전락해 버리고 아이들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자리를 떠버립니다.

 

관계라는 것은 나 혼자 잘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단시간 내에 이뤄지는 것도 아닙니다. 특히나 그 나이 정도면 회사에서 어느 정도 입지와 지위를 가지시는 분들의 경우, 부하직원들이 자신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에 익숙해 있다가 자신에게 언성을 높이고 불량한 태도를 가지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아질 리 만무합니다.

 

한국에서는 그나마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버지의 양육에 참여가 크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양육 참여 시간이 현저히 줄어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가 어릴 때 아버지가 양육에 참여하는 비율이 적어도 아이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은 반면, 아이들이 성장해 나감에 따라 아버지의 양육 참여도와 아이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의 상관도가 점점 더 커진다는 데 있는 것이지요.

 

이제라도 늦지는 않았습니다. 포기할 필요는 더더욱 없습니다.

처음부터 무거운 주제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가볍고 일상을 물어봐주고 그 대답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충분하게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해 주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면 그 나머지는 시간이 점차 해결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칭찬과 격려를 해준다면 더 시간은 더 단축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잊지 마세요. 아이가 커나갈수록 아버지의 영향은 점점 더 커져야 합니다.

 

 

두 번째 단락의 제목은 "아빠인가, 제2의 엄마인가"입니다.

 

이 단락의 시작은 나름 의욕을 가지고 아이와 어울리며 함께 하려 하는 아빠와 기존에 양육의 방식을 갖고 있는 엄마 사이의 갈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엄마는 아빠와 아이 사이에 게이트 키퍼(gate keeper / 문지기) 역할을 하는데,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양육의 전권을 쥔 엄마의 눈에 어설픈 아빠의 모습이 계속 거슬리게 되고 그것을 지적하는데서 시작합니다.

 

문제는 이것이 자꾸 반복되어 버리면, 그나마 뒤늦게 의욕을 갖고 좋은 아빠가 되려는 많은 아빠들의 사기를 꺾어버리고 점점 양육을 엄마에게 미뤄버리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문제이지요.

아빠도 양육의 역할이 있고 자신의 의견이 있음에도 그 모든 것이 무시되는 것! 이것이 이 단락의 주제입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바로 "엄마들도 좋은 아빠의 기준이나 요건을 잘 알지 못한다"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아빠들은 이전 세대에서 보고 배울 모델이 마땅치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아빠의 모습을 강요 아닌 강요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빠들만 그럴까요?

딸들 또한 같은 아버지 모습을 보고 자랐는데 말이죠.

 

그 딸들이 커서 엄마가 되고 이제는 남편인 아이 아빠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어주기를 바라고 원하지만, 정작 어떤 것이 좋은 아빠인지에 대해서는 엄마들 또한 겪어보지 못했기에 알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아이와 소통을 잘하고, 아이의 마음을 잘 읽어주는 부드러운 아빠가 좋은 아빠인가요?

 

사실 이 모습은 이전 세대에서 엄마에게 요구되었던 자질입니다.(그것이 옳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어떤 것이 좋은 아빠의 모델인지는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좋은 엄마의 모습은 경험한 세대가 정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모습은 아빠들이 '제2의 엄마'가 되라고 하는 것이 되어 버린 것이죠.

 

이것에 대해 본문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 조선미 교수의 지적을 들어보자.

 

"많은 젊은 부부들이 아빠가 엄마처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시는데, 결코 그렇지 않고요. 마음을 읽어준다는 건 아이의 마음을 섬세하게 알아주고 원하는 걸 들어준다는 게 아니라, 아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왜 그렇게 하는지를 내가 알아차린다는 거죠.

 

그렇게 알아차리고 나서 '아. 이건 내가 수용하고 받아주는 게 좋겠구나' 혹은 '통제하고 훈육하는 게 맞겠구나'하는 게 그다음 단계에서 이뤄져야 해요.

 

그렇지 않고 엄마처럼 알뜰살뜰하게 보살펴야 한다면, 저는 그런 부성은 소통이 안 되는 부성만큼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본문 p118)

 

또한 체계화시키는데 익숙한 아빠, 공감하는 것을 잘하는 엄마의 모습 모두를 배워야 하는 아이들이 엄마의 모습만을 배워 역할 모델을 삼는다면 그 또한 아이들을 균형을 상실한 채 성장하게 만드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해 미국의 학자들이 아버지가 수행해야 할 역할을 7가지로 정리했습니다.

 

  • 자녀와 시간을 보내는 아버지
  • 자녀에 대한 지식이 있는 아버지
  • 일관성 있는 아버지
  • 위기상황에서 분별력이 있고 가정에 일정한 수입을 제공하는 아버지
  • 아내를 사랑하는 아버지
  • 주의를 기울여 경청하는 아버지
  • 정신적으로 '준비된' 아버지

 

아빠들이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양육에 참여하기 위해선 중간자적인 엄마들의 역할이 정말 중요합니다. 엄마가 아빠의 역할에 대한 정확한 인식 없이 엄마의 바람대로만 요구하거나 엄마들만큼 아이들의 요구나 반응에 민감하지 못한 아빠들의 미숙 Main category: 일반도서 - 세상을 알자!

Subcategory: 재미는 좀 없지만 필독!

추천 대상:

잘은 모르겠지만 내 아이에게 더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 분!

2013년이 이 책을 읽었고 책 뒤에 별 5개 한 줄 후기엔 "의욕만으론 불가능하다. 알아야 '제대로' 잘할 수 있다"라고 적은 책입니다.

 

지금이야 큰애가 초등학교 6학년, 작은애가 초등학교 4학년이라 이제는 제법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얘기할 줄도 알고, 나름 반항도 하는 시기라 큰 고민이 없었지만.. 2013년만 하더라도 한창 양육에 대해 고민이 많던 시기였습니다.

 

아이들이 갓난아기 때는 몸은 정말 힘들었지만, 마음은 편했던 것 같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그때그때가 분명했거든요. 배고프면 먹이고, 싸면 갈고 씻기고, 졸려하면 재우면 됐지요.

 

그런데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짧고 간단하지만 자신의 요구를 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몸은 조금 편해졌지만 마음고생이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제 아버지만 보더라도 제가 어릴 땐 참 엄하셨습니다. 맞기도 많이 맞았고요. 지금의 아버지들의 모습은 그 당시 부모님들께는 정말 발견하기 힘든 모습이었지요.

 

그런데 세월이 변했습니다.

 

이제는 예전 아버지 세대의 모습으로 양육에 임한다면 지탄의 대상이 되어 버립니다. 시대착오적 아버지라는 꼬리표를 떼기가 어렵습니다. 

보고 배운 것은 엄한 아버지, 무뚝뚝하고 소통이 쉽지 않은 아버지의 모습인데.. 요구되는 모습은 그와 정반대의 모습을 요구하니 많이도 답답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답답함을 가지던 중 우연히 보게 된 EBS 다큐에서 아버지들에 대한 내용이 다루어지는 것을 알고 그 내용이 담긴 책을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종류의 책이 범하기 쉬운 오류는 편협되고 한정된 경험에서 오는 일반화의 오류일 것입니다. 쉬운 말로 내가 경험한 상황을 다른 사람에게 무조건 옳다고 강요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이 책이 신뢰가 가는 이유는 단일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책이 아니라 여러 실험과 광범위한 사례를 종합한 결과라는 것이겠지요.

 

 

이 책은 총 4부로 나뉘어서 진행한 다큐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는데요. 다큐보다 책을 선호하는 이유는 다큐는 생각할 시간을 갖기 쉽지 않은 반면 책은 중간중간 느끼는 바가 있을 때 충분히 책장을 덮고 생각을 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습니다.

 

1부는 "잊힌 양육자 "란 제목이며, 일을 해서 가족을 부양한다는 전통적 가치관의 아버지상에 익숙한 현대의 아버지들이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대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에 대해 언급하면서 아버지의 양육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 예를 잘 볼 수 있는 내용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 패퀘트 교수는 "엄마와 아빠가 아이를 키울 때 서로 다른 역할을 할수록 아이에게 이익이 크다. 아빠가 아이의 모험심을 자극해주면 아이는 위험을 극복하고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라고 말했다.

 

또한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신체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자기 힘을 마음껏 행사하는 동시에 '힘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영욱의 심리학자 찰리 루이스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아이와 아빠의 요란한 신체놀이는 아이가 아빠를 힘으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한계를 배우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놀이는 아이가 어떤 경계를 인지하게 만들고, 그 밖으로 나가 탐험할 수 도 있게 한다. 아빠는 아이가 안전한 범위 내에서 그 한계를 조금씩 밖으로 확장하도록 유도하곤 하는데, 이건 엄마들이 잘 못하는 영역이다." (본문 p46-47)

 

이런 행동적,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는 부분뿐 아니라 언어의 영역에 대해서도 엄마와 아빠의 영향력은 확연히 구분되는데요, 그에 대한 예도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 아버지가 아이의 어휘력에 도움을 주는 방식은 엄마와 확연히 구분된다. 아버지들은 엄마들처럼 유아어를 쓰는 대신 성인의 언어를 구사한다. 찰리 루이스 교수는 아버지 언어의 특이한 점으로 '아이들에게 익숙하지 안ㅇ느 단어를 쓴다'는 사실을 들었다. 엄마들은 아이들이 아는 어휘를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반면 아버지들은 아이가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를 거리낌 없이 쓴다. 아버지들은 긴 단어를 사용할 뿐 아니라 위트나 풍자가 들어가는 복잡한 언어를 구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는 아이를 배려하지 않는 이런 행동이 아이의 언어발달에 도움을 준다는 것 (본문 p47)

 

 

이렇게 아빠를 통한 양육의 고유한 영역과 그에 대한 차별화된 영향이 분명히 보인다면 아빠들 그리고 이 사실을 먼저 접한 엄마들은 마음이 급할지도 모릅니다. 혹은 시간이 없거나 바쁜 직장생활로 인해 아이들과 함께 해준 시간이 너무 없음에 대해 성급히 후회만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의욕을 가지고 시작하려 해도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막막한 분들도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그랬던 것 같이 말이죠.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저희 부부의 침대로 쳐들어와서 하루를 엄마나 아빠 중 한 명과 같이 잡니다.(당연히 둘째인 4학년 딸도요)

 

지금도 "차량이 도착했습니다" 알림이 들리면 하던 것을 멈추고 후다닥 숨바꼭질 모드로 전환하여 숨고 "아빠 찾아보세요"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못 찾는 척해주다가 '간지럼 괴물'로 마무리 짓곤 하지요.

 

 

길을 갈 때 아직 손잡고 다니는 아들과 딸.

 

서로 뽀뽀해 주는 것에 서로 어색해하지 않는 관계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서로 얘기하고 들어주는 관계

 

 

처음부터 이렇게 잘 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의욕만큼이나 지식이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고 마냥 다 받아주고 아이들에게 쩔쩔매는 아빠의 모습을 보이라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그것에 대해 본문에선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 손석한 연세 신경정신과 원장은 어느 매체에서 요즘 아빠 중 상당수는 프렌디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엄마는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자연스레 잔소리가 많아지죠. 반면 (가끔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아빠는 자녀의 잘못을 무조건 덮어주려고만 합니다. 그건 '친근함'이 아니라 '직무유기'입니다. 아빠 조 자녀의 잘못된 행동을 보면 상황 중재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합니다 (본문 p64)

 

이런 잘못된 모습에 대해 이 책에서는 '규율의 부재'로 적고 있습니다.

 

주눅들며 자라는 것도 올바르지 않지만, 버릇없이 크는 것 또한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경계선, 제한선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마냥 어리지만 않다면 경계선을 정하는 데 있어 아이가 같이 참여하여 결정을 함께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것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방 정리를 잘 못하는 아이에게 훈육을 함에 있어

 

"1. 무조건 혼을 낸다"도 해보았지만 모든 잔소리가 그렇듯 반복이 지속되더군요.

 

"2.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마냥 기다려준다"도 해보았지만 어느 정도 큰 아이들이거나 아니면 상호 대화가 익숙한 가정이 아닌 이상 상황은 나아지지 않은 체 부모님 성격만 버리는 경우가 많고요.

 

"3. 부모가 일방적으로 경계선을 긋고 통보한다"도 해보았지만 역시나 잘 지켜지지는 않습니다.

 

저희 집에서 마지막으로 한 방법은 그 경계선을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는 것이었지요.

 

방을 왜 잘 치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얘기해보고, 아이가 왜 잘 못 치우고 있는지에 대해 아이의 말도 들어본 후 "3번 방에 대해 지적이 나올 경우 한 가지 자유를 제한한다."는 경계선을 함께 설정하였습니다.

 

처음에야 역시나 반복되곤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참여한 룰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지키려 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엄마만 이런 제한성 설정에 관여한다면 그 효율은 물론이고 제한성 설정 자체가 매우 힘들어 잔소리의 악순환만 더 심화될 뿐이겠지요.

 

 

또 하나 짚고 가야 할 부분은 육아에 관여하는 아빠들이 조금은 받아주다 갑자기 전통적인 아버지상으로 돌변하는 것 또한 좋지 않습니다. 예측이 어려운 갑작스러운 분노는 아이들의 정서발달에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언제 터질지 모를 감정의 폭발에 대해 늘 조마조마해하는 아이들에게 정서적 안정을 주기가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아이의 입장에서도 마냥 풀어진 상황에서의 자유가 더 좋을 것 같지만 많은 연구 결과에서 한계가 분명한 상태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는 것으로 나온 만큼 부모님 아이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겠지요?

 

그리고 이런 방향으로 나아감에 있어 아버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 많은 곳에서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되시는 분은 프랑스 가정교육에 대한 동영상 등을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글을 읽거나, 강연을 듣거나 하신 많은 '준비되지 않고 훈련되지 않은' 아버지들이 겪는 문제가 있는데, 그것을 이 책에서는 "뒤늦은 아빠 노릇은 사춘기의 쇼크를 부른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말을 그나마 듣고 말로 그리고 때로는 훈육이 먹히는 시기는 그나마 괜찮지만 아이들이 중학생 이상이 되고, 사춘기 반항이 시작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일단, 아빠가 육아에 함께 하지 않는 집이라면, 엄마 혼자서 아이들 생활을 지도할 텐데.. 이때 즈음이면 아이들을 엄마 혼자서는 지도가 어렵게 되어 버립니다. 힘으로도 말로도 말이죠.

 

그제야 엄마들이 아빠의 등을 떠밀며 뭐라도 해보라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아빠는 어떻게 할지를 모르고, 감정적으로 날카롭게만 대립하다 끝내 큰소리를 내는 것으로 종결된다는 것이죠.

 

아이들도 '차라리 그냥 내버려 두셨으면 좋겠어요', '왜 이제 와서 저러는지 모르겠어요' 같은 반응들로 오히려 아빠의 개입을 불편한 것으로만 여기게 되지요.

 

 

다큐에서는 모처럼 자녀교육에 대한 강의를 듣고 온 아빠가 아이들을 불러 모아 이렇게 얘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야! 할 말 있으면 해 봐!"

 

그리고 아이들이 눈치만 보며 말이 없으니

 

"할 말들 있을 거 아냐 빨리 말해봐"

 

하며 다그칩니다.

 

그리고 간신히 나온 아이들의 의견은 묵살과 동시에 잔소리 거리로 전락해 버리고 아이들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자리를 떠버립니다.

 

 

관계라는 것은 나 혼자 잘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단시간 내에 이뤄지는 것도 아닙니다. 특히나 그 나이 정도면 회사에서 어느 정도 입지와 지위를 가지시는 분들의 경우, 부하직원들이 자신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에 익숙해 있다가 자신에게 언성을 높이고 불량한 태도를 가지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아질 리 만무합니다.

 

한국에서는 그나마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버지의 양육에 참여가 크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양육 참여 시간이 현저히 줄어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가 어릴 때 아버지가 양육에 참여하는 비율이 적어도 아이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은 반면, 아이들이 성장해 나감에 따라 아버지의 양육 참여도와 아이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의 상관도가 점점 더 커진다는 데 있는 것이지요.

 

 

이제라도 늦지는 않았습니다. 포기할 필요는 더더욱 없습니다.

 

처음부터 무거운 주제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가볍고 일상을 물어봐주고 그 대답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충분하게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해 주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면 그 나머지는 시간이 점차 해결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칭찬과 격려를 해준다면 더 시간은 더 단축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잊지 마세요. 아이가 커나갈수록 아버지의 영향은 점점 더 커져야 합니다.

 

 

 

두 번째 단락의 제목은 "아빠인가, 제2의 엄마인가"입니다.

 

이 단락의 시작은 나름 의욕을 가지고 아이와 어울리며 함께 하려 하는 아빠와 기존에 양육의 방식을 갖고 있는 엄마 사이의 갈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엄마는 아빠와 아이 사이에 게이트 키퍼(gate keeper / 문지기) 역할을 하는데,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양육의 전권을 쥔 엄마의 눈에 어설픈 아빠의 모습이 계속 거슬리게 되고 그것을 지적하는데서 시작합니다.

 

문제는 이것이 자꾸 반복되어 버리면, 그나마 뒤늦게 의욕을 갖고 좋은 아빠가 되려는 많은 아빠들의 사기를 꺾어버리고 점점 양육을 엄마에게 미뤄버리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문제이지요.

 

아빠도 양육의 역할이 있고 자신의 의견이 있음에도 그 모든 것이 무시되는 것! 이것이 이 단락의 주제입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바로 "엄마들도 좋은 아빠의 기준이나 요건을 잘 알지 못한다"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아빠들은 이전 세대에서 보고 배울 모델이 마땅치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아빠의 모습을 강요 아닌 강요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빠들만 그럴까요?

 

딸들 또한 같은 아버지 모습을 보고 자랐는데 말이죠.

 

그 딸들이 커서 엄마가 되고 이제는 남편인 아이 아빠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어주기를 바라고 원하지만, 정작 어떤 것이 좋은 아빠인지에 대해서는 엄마들 또한 겪어보지 못했기에 알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아이와 소통을 잘하고, 아이의 마음을 잘 읽어주는 부드러운 아빠가 좋은 아빠인가요?

 

사실 이 모습은 이전 세대에서 엄마에게 요구되었던 자질입니다.(그것이 옳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어떤 것이 좋은 아빠의 모델인지는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좋은 엄마의 모습은 경험한 세대가 정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모습은 아빠들이 '제2의 엄마'가 되라고 하는 것이 되어 버린 것이죠.

 

 

이것에 대해 본문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 조선미 교수의 지적을 들어보자.

 

"많은 젊은 부부들이 아빠가 엄마처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시는데, 결코 그렇지 않고요. 마음을 읽어준다는 건 아이의 마음을 섬세하게 알아주고 원하는 걸 들어준다는 게 아니라, 아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왜 그렇게 하는지를 내가 알아차린다는 거죠.

 

그렇게 알아차리고 나서 '아. 이건 내가 수용하고 받아주는 게 좋겠구나' 혹은 '통제하고 훈육하는 게 맞겠구나'하는 게 그다음 단계에서 이뤄져야 해요.

 

그렇지 않고 엄마처럼 알뜰살뜰하게 보살펴야 한다면, 저는 그런 부성은 소통이 안 되는 부성만큼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본문 p118)

 

또한 체계화시키는데 익숙한 아빠, 공감하는 것을 잘하는 엄마의 모습 모두를 배워야 하는 아이들이 엄마의 모습만을 배워 역할 모델을 삼는다면 그 또한 아이들을 균형을 상실한 채 성장하게 만드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해 미국의 학자들이 아버지가 수행해야 할 역할을 7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자녀와 시간을 보내는 아버지

자녀에 대한 지식이 있는 아버지

일관성 있는 아버지

위기상황에서 분별력이 있고 가정에 일정한 수입을 제공하는 아버지

아내를 사랑하는 아버지

주의를 기울여 경청하는 아버지

정신적으로 '준비된' 아버지

 

아빠들이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양육에 참여하기 위해선 중간자적인 엄마들의 역할이 정말 중요합니다. 엄마가 아빠의 역할에 대한 정확한 인식 없이 엄마의 바람대로만 요구하거나 엄마들만큼 아이들의 요구나 반응에 민감하지 못한 아빠들의 미숙함을 탓하며 기회조차 뺏는다면 아빠들은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할 자리가 없어지게 됩니다.

 

아빠의 역할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하고, 잊히고 간과되었던 아빠들의 본래 자리를 잘 찾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달성할 수 있는 그 자리를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할 거 같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평안한 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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