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집사 어디가~ 시즌2

[시즌2 #35]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성도가 '불확실한 세상'을 어떻게 믿음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by 현명소명아빠 2020. 12. 25.
김집사 어디가 시즌2 #35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성도가 '불확실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김집사는 요즘 셀모임에서 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이란 책으로 책 나눔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 나눔과 책 나눔을 동시에 하는 것은 장단점이 있겠지만, 최소한 오늘은 장점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왜냐면 오늘 말씀 나눔과 책 나눔의 주제가 합쳐서 한 가지 의문점을 가지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말씀 나눔의 주제는 '어려움 가운데서 믿음이 어떻게 드러나는가?'였고, 책 나눔 주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부분이었지요. 그리고 그 두 가지 주제에서 도출된 질문은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성도가 불확실한 세상을 어떻게 믿음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입니다.

 

이 의문점에 도달하기까지 김집사에게 어떤 과정들이 있었는지 함께 살펴보실까요?

 

오늘 말씀나눔의 메시지는 마태복음 1장 18-23절 말씀입니다.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것을 요셉이 발견하고 조용히 관계를 끊고자 하던 중에 주의 사자가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메시아의 탄생을 이야기하는 장면입니다. 예전에 한 번 다룬 적 있는 '예수는 12살'이란 책에서, 오늘 이 말씀의 장면으로 인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요셉 가정의 어려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유대 율법을 바탕으로 했던 당시 사회에서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아이였던 예수는 동네에서 늘 구설수에 오르고 집안의 수치이자 동네의 수치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예수를 묵묵히 키웠던 요셉은 '배알도 없는 놈'으로 또한 동네 사람 입에 오르내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 전, 그의 태중에 메시아가 탄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누가복음 1장), 목자들의 입을 통해 전해받은 천사의 기쁜 소식을 듣고 마음에 새기었던(누가복음 2장) 마리아는 오랜 시간 고뇌와 갈등의 시간 속에 어린 예수를 양육해 왔을 것입니다. 왜냐면 당시 로마의 압제 하에 있던 이스라엘에게 메시아란 곧 로마의 압제에서 유대를 구원할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지요. 

(성경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중간기[구약과 신약사이]에서 헬레니즘의 공격으로부터 유대를 구해내었던 마카비 같은 인물을 메시아의 모습으로 당시 사람들은 여겼을 것 같습니다.) 특히나 거주하던 동네인 나사렛은 갈릴리 근처였고, 당시 갈릴리는 무장항쟁이 활발히 벌어지던 곳이었으니, 더더욱 자기 자식이 저런 모습으로 자라나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이 많지 않았을까요?

 

마을 사람들의 차별어린 시선과 태도도 문제였겠지만, 분명한 예언이 있었음에도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인 약 30살 전까지의 긴 시간은 예수님 자신과 그 가정에겐 그 '불확실성'으로 인한 어려움이 컸으리라 짐작해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 또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불안해하고 힘들어 하진 않습니까?

 

어떤 책에서 그런 글을 읽었습니다. 

'공부하지 않는 아이를 보며 부모가 힘들어하는 이유는 현재 그 아이의 모습 때문이 아니라, 그 아이가 성장하였을 때 실패할 모습을 떠올리기 때문이다.'라고요. 우리는 살면서 많은 불안감 가운데 살지만 그 불안감의 대다수의 이유는 이미 일어났거나, 현재 일어나는 일로 인해서가 아닌 과거나 현재의 일을 기반으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을 예상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안 그래도 이런 불확실성으로 인해 불안하고 힘든 삶을 사는 세상인데, 거기에 하나님의 주권이란 개념이 더해지니 오히려 더 불안해지는 느낌을 김집사는 가졌습니다. 왜냐면... 성경에서 하나님의 모습은 항상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레에 실린 여호와의 궤가 떨어질 뻔하여 붙잡았다가 죽은 '웃사', 자신의 땅을 판 돈을 거짓으로 아뢰었다가 죽은 '아나니야와 삽비라' 같은 이들은 2번의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 정말 악당이라 여겨지는 아합, 아하스 왕 같은 이들은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번의 기회를 받습니다. 어떠세요? 김집사만 혼란스러워하는 건가요?

 

성경만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어떤 장로님은 존경과 명예와 물질 모두 축복받으신 것처럼 보이는데, 나는 뭔가라는 질문을 떠올리신 적은 없으신가요? 어떤 권사님은 새벽기도 하실 때마다 응답을 받으신다는데, 나의 오랜 기도제목은 여전히 침묵 가운데 기다림만 있지는 않으신가요? 김집사만 불공평하다고 느끼고 있나요?

 

성경을 읽다 보면, 그리고 삶 속에서, 교회 공동체 내에서도 이렇게 '공평해 보이지 않는' 여러 장면들을 쉽게 만날 수 있고, 이런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상 기억해야 하는 개념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대로 하실 수 있는 권리가 있으시다는 개념이지요. 그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만물의 주관자이시기 때문에 당연히 가지실 권리입니다. 김집사는.. 지식으로는 알지만, 뭔가 후련하진 않습니다.  

 

우리는 도대체 하나님의 주권과 불안한 삶 속의 고난 가운데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고민해 보던 김집사는 정답이라 할 순 없겠지만, 나름의 해답을 아래와 같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지식을 통해 알아가는 하나님

2.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3. 경험을 통해 알아가는 하나님

 


1. 지식을 통해 알아가는 하나님

 

하나님께선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권리가 있으시지만, 그분의 성품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즉 현상 이면의 그분의 성품을 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처럼 순간순간마다, 기분 따라 다르게 행동하는 분이 아니심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어떠신가요?

 

하나님께선 '공의'로우시고, '신실'하시며, '사랑' 그 자체이시며, 연약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동시에,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을 아는 지식을 쌓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고, 책을 읽음으로써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현상으로 나타나는 어떤 모습 이면에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2.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을 통해 약속하신 것이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품 하나가 '언약을 성취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바탕에는 하나님의 성품인 '신실'이 또한 있습니다. 언제나 믿을만한 분이시란 뜻입니다. 왜냐면 그분은 말씀을 번복하지 않으시기 때문이지요. 

 

 

3. 경험을 통해 알아가는 하나님

 

우리는 삶 속에서 다양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를 경험합니다. 물론 우리가 깨어있지 않을 때는 '운이 좋았어'라고 치부하기도 하지만요. 그리고 나의 얄팍한 경험이 마치 하나님 모습의 전부라고 착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경험을 통해 알아가는 하나님은 지식으로 아는 하나님, 그리고 언약의 성취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균형 있게 경험하고 알아갈 때 비로소 우리 성도의 믿음을 굳건하게 합니다.


 

김집사는 최근 몇 달 동안 기도해 오는 기도제목의 응답이 늦어지는 것을 보며 마음이 많이 조급해 지곤 하였습니다. 머리로는 '하나님께서 지금도 일하고 계시고, 나를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계시다'를 알지만, 마음은 불안해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 김집사에게 오늘 이 질문은 여러 가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 가운데 이 말씀을 읽으면서 기존과는 다른 메시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6-7)

 

우리의 간구가 감사함으로 아뢰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주권으로 일하시지만, 동시에 선한 목자이심을 믿기에 감사함으로 아뢸 수 있음이며, 그러는 가운데 우리의 연약함과 불안함을 이해하고 아시는 하나님의 평강이 불안 가운데 쉽게 무너지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안다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함에도 오히려 우리는 우리 마음의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지식적으로/경험적으로 더 알아가야 합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