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집사 어디가 시즌2 #34
군대 귀신이 쫓겨 나갔을 때 왜 백성들은 두려워하였을까?
누가복음을 읽던 중 익히 잘 아는 말씀이지만, 오늘따라 한 번 더 질문을 던져보게 되는 장면이 있었는데요. 바로 거라사 지방에서 아무도 제어하지 못했던 귀신 들린 자를 예수님께서 그 귀신을 쫓아내시고 정상으로 돌려놓으신 사건입니다. 이 사건 중 그 쫓겨 나간 귀신들이 돼지떼에 들어가서 몰살당한 사건이 동시에 발생했습니다.
누가복음 8장에서 해당 사건이 일어난 장면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들이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예수께서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 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그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귀신이 가끔 그 사람을 붙잡으므로 그를 쇠사슬과 고랑에 매어 지켰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이르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마침 그곳에 많은 돼지 떼가 산에서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락하심을 간구하니 이에 허락하시니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 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 치던 자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고 도망하여 성내와 마을에 알리니 사람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귀신 들렸던 자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본 자들이 그들에게 이르매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예수께 떠나가시기를 구하더라 예수께서 배에 올라 돌아가실새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를 구하였으나 예수께서 그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 하시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 (누가복음 8:26-39)
같은 장면의 묘사가 마태복음에도 나오는데요.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그들은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 이에 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마침 멀리서 많은 돼지 떼가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이르되 만일 우리를 쫓아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보내 주소서 하니 그들에게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 달아 바다에 들어가서 물에서 몰사하거늘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 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마태복음 8:28-34)
성경 간에 약간 차이는 보입니다. 지방의 이름이 거라사가 아닌 간다라로 되어 있고, 귀신 들린 자가 한 명이 아닌 두 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라사인의 땅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그 지역 거주민들을 거라사인이라 지칭하는 걸로 보이고, 그 거라사인들이 거주하는 지명이 간다라 지방인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누가복음에서는 한 명이라고 분명히 적시되어 있는데, 마태복음에서는 두 명이라고 나오네요. 서로 다른 사건인가 싶기도 했지만, 풍랑이 치는 바다를 잠잠케 하신 사건 직후에 발생한 사건이라는 공통점이 있기에 동일한 사건을 묘사했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묘사를 통해 또 유추할 수 있는 점은 거라사인의 땅 가다라 지방은 유대인 거주지역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죠. 돼지는 유대 율법 상 부정한 짐승입니다. 굽은 갈라졌지만, 되새김질을 못하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그 전통이 굳게 지켜지고 있습니다. (추가로 말씀드리자면, 돼지는 목살 정확히는 목 뒤 쪽 살이 많아 하늘을 보지 못한다는군요.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 않는 짐승이라는 이유도 부정한 짐승을 규정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하니 재밌습니다. 이스라엘 여행 중 가이드님께 들은 내용입니다.)
이런 돼지를 집단으로 사육하는 지역이 유대인 지역일 수 없지요. 그래서 유대 땅에 거주하는 헬라인의 거주지 역임을 유추해 볼 수 있는데요. 이 돼지가 유대 율법에서는 부정한 짐승이지만 헬라 문화지역에서는 신에게 바치는 최고급 제물이었습니다. 그래서 '탕자의 비유'에서 나오는 쥐엄 열매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우리나라식 돼지밥'이 아니라 지금도 이스라엘에서 접할 수 있는 '나무의 열매'이고 헬라 지역에서 돼지는 나무 열매로 먹이를 먹일 정도로 정성을 다해 키우는 귀중한 제물입니다.
이제까지 가정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해 보자면,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좌편에서 무리를 가르치신 후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시면서 풍랑을 잠잠케 하신 후 갈릴리 호수 동편의 헬라인 거주지역으로 들어서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한 명 혹은 두 명의 귀신 들린 자를 만나시게 됩니다. 그 혹은 그들은 그 지역 주민들이 쇠사슬로 구속하려 해도 구속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비정상적으로 센 것으로 보이고, 그 지역의 큰 문젯거리이자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귀신이 먼저 예수님을 알아보고 간청하기 시작합니다. 억울하다고 합니다. 왜 아직 정해진 때가 오지도 않았는데 자신들을 이렇게 괴롭게 하냐고 합니다. 그러나 거역하진 못하고 그래서 차선책으로 돼지떼로 들어가게 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허락하시죠.
그렇게 그 가엾은 이 혹은 이들은 자유함을 얻고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있는 것을 마을 주민들이 보게 됩니다. 유대 지역에 거주하는 헬라인들로 보이는 그 주민들은 그 제어할 수 없었던 이가 자유함을 얻고 얌전해진 것을 보며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읽으며 느꼈던 부분인데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이나 예상 이상의 것이 이루어진 것을 볼 때 두 가지 태도를 취하게 되는데, 무릎을 꿇거나 반발하여 오히려 공격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들은 이 놀라운 일을 보며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게 되고 두려움을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놀라우신 권능 앞에 그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읽으며 다른 관점에서 질문을 던져 본 것은 '왜 돼지떼로 들어가서 몰살당했을까?'였습니다. 복음서의 여러 장면에서 예수님은 많은 귀신 들린 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그 귀신들이 동물로 피신(?) 하지는 않았지요. 그냥 쫓겨 나갔습니다. 그런데 왜 이 장면에서는 돼지떼로 들어가서 몰살되었을까요?
그리고 또 주목할 점은 누가복음과 마태복음 모두 온 동네의 주민들이 모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았다고 기술하는 점입니다. 마치 사마리아 성에서 한 여인과의 만남을 계기로 온 사마리아성 주민들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된 것처럼 말이죠.
그들은 헬라인으로 보이고, 자신들만의 신들(아마 그리스 신화의 신들이겠지요.)을 믿고 섬기던 이들이었을 겁니다. 특히나 돼지를 친다는 것은 간접적으로라도 신전과 연계된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그들의 신이 하지 못한 일을 하는 이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마치 모세의 10가지 재앙을 통해 이집트의 신들의 형상이 하나하나 하나님의 권능 앞에 무너지는 것을 보듯이, 그들의 신에게 바칠 제물이 몰살당하는 일을 눈앞에서 보게 됩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지금처럼 종교와 삶이 분리되는 시대가 아니었음을 감안할 때 그들에게 나타난 사건은 모두 신과 관계된 일로 해석하였을리라 보입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목격한 이들과 그 지역의 주민들 모두 예수님의 권능이 자신들의 신을 넘어선다고 느꼈을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이 그들의 율법이라는 색안경으로 예수님을 평가절하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들은 순수하게 예수님의 능력을 바라보고 두려움을 느껴 그들에게서 떠나시기를 간청합니다. 자신들의 죄가 예수님의 공의 앞에 드러나게 되어서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참 신은 하나님 한 분이심을 그들이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생각이 드네요.
이 사건은 헬라인 거주지역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발생한 사건이고, 이 지역에서 이 귀신들린 자를 자유케 하신 이후 예수님은 바로 그곳을 떠나십니다. 즉 그곳에서의 목적을 다 이루셨다는 의미입니다. 그 사람을 귀신의 권세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과, 그 사건으로 인해 그 지역의 이방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이심으로써 그 땅의 이방인들도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함이지 않았을까요? 귀신 들린자 한 사람만의 영적 전쟁이 아닌 그 땅의 많은 주민들을 위한 영적 전쟁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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