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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도서 - 하나님을 알자!/유대인의 눈으로 본 기독교

리얼 코셔 예수 / 마이클 L. 브라운 / 이스트윈드 - #3

by 현명소명아빠 2019. 9. 25.
  • Main category: 신앙도서 - 하나님을 알자!
  • Subcategory:  유대인의 눈으로 본 기독교
  • 추천 대상:
    • 모태 기독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의 신앙을 바라보고 싶은 분
    • 믿으니까 믿는다? 가 아니라 객관적인 증거들로 신앙을 다시 보고 싶은 분
    • 유대 전승 및 토라에 나타난 예수님의 메시아이심에 대한 증거들을 알고 싶은 분

 

유대인들의 선민의식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 보셨을 겁니다. 선택받은 민족, 구별된 족속으로서 그들의 자부심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리고 자신들만이 선택받았기에 특별하다는 것을 넘어서서 이방인들은 구원 받을 가치가 없는 이들로까지 치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방인들도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바울의 주장은 당시 예수를 핍박하던 유대인들  아니라 예수를 구주로 믿는 유대인들에게 조차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었습니다.

 

 부분에서 저자는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특별히 선택하셨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뜻은 유대인들만의 구원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근거를 신약에서 찾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면 유대인들은 신약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요.

 

저자는 타나크(히브리 성경 또는 구약성경)에서 아래와 같이 하나님의 뜻이 유대인을 통해 궁극적으로 어디로 향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 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때는 아브람이라 부르셨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민족으로 만들고 내가 너에게 복을  것이다. 내가  이름을 크게 하고, 너는 복이  것이다. 너에게 복을 주는 자에게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할 것이다.

 

그리하여 땅의 모든 백성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게  것이다( 12:2-3). 주님은 그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명령을 지킬  사람을 찾고 계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들의 후손들을 통하여  세상에 복을 주기를 원하셨다.

 

… (중략)..

 

너희는 나에게 제사장의 나라이며 거룩한 백성이  것이다( 14:4-6) 제사장은 다른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길을 가르친다. 이스라엘은  세상의 다른 사람들에게 주의 길을 가르치는 제사장 나라 부르심을 받았다.

 

..(중략)..

 

내가 또한 너를 이방의 빛이 되게 하여 네가 나의 구원을  끝까지 이르게  것이다”( 49:6)

 

..(중략)..

 

그러므로 주여 내가 이방 나라들 가운데 주를 찬양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시편 18:49)

내가 주에 대한 기억을 모든 세대에 영원하게 하며, 그리하여 민족들이 주를 영원히 찬송하게 하리이다. (시편 45:17)

주여 내가 열방 가운데 주를 찬송하고, 백성들 가운데 주를 찬양하리이다. (시편 108:3)

 

..(중략)..

 

땅의 모든 끝이 기억하여 주께로 돌아오고, 모든 나라의 족속이  앞에 경배할 것은, 나라가 주의 것이며 주께서 민족들을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22:27-28)

주여, 주께서 만드신 모든 민족이  앞에 와서 경배할 것입니다. 그들이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시편 86:9)

 

..(중략)..

 

당신은  ,  민족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선포하는 , 그리고 그런 의미로 유대교가 선교적인 종교가 되는 것이 유대 백성의 거룩한 부르심의 일부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가? 바울은  명령을 이해했다. 이것은 그를 둘러싼 논쟁의 중요한 열쇠다. (본문 p182-185)

 

 바울은  유대주의를 지향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선택받은  본래의 의미를 깨닫고 이해하였기 때문에 이방을 향했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면 좋을  같습니다.

 

바울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바울이 예수를 구주로 믿는 이들에게까지 배척을 받은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역사적 정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 예루살렘은 사도행전 2장의 사건이 일어났을 (, 25-30 )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긴장이 고조 되었고, 성전에서는 시카리 혹은 암살자들이 이방인들과 손을 잡은 혐의가 있는 귀족들을 죽였다. 유대 민족주의가 확산되고 있었고, 민족주의의 배타성으로 다른 민족 출신의 구성원들과 교제했다고 알려진 자기 민족의 신실한 구성원들은 용납될  없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온전한 유대인임을 증명해야만 했다. (본문 p187)

 

민족주의가 팽배하다 못해 과격행동에까지 이르고 있는 이때에 바울은 메시아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은 동등하다고 주장한 것이기 때문에 그는  곤경에 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즈음에서 이야기를  진행하기앞서 바울에 대한 우리의 오해들을 잠시 풀고 갑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이었는데요. 이 글을읽으시는 분들도 같이 읽으면 재미있게 보실  같습니다.

 

- “여러분은 사울과 바울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십니까?”  질문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은 이렇다. ‘다소 출신의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유대교의 지도자였으나, 그는 회심하고 자기의 이름을 바울로 바꾸고 기독교의 지도자가 되었다. , 사울 = 유대교인 = 나쁜사람, 바울 = 기독교인 =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맞는 말인가?

전혀 아니다. 다소 출신의 사울은 유대교의 지도자였고 태어날 때부터 바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사울은 히브리어 이름이고, 바울은 헬라어 이름이다. 이것은 헬라 도시에서 태어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매우 흔한 일이었다.)

 

..(중략)..

 

그는 다른 종교에 속한 사람들을 박해한 적이 없었고, 다른 종교로 개종한 적도 없으며, 그는 소위 말하는 그의 개종 사건 이후에 새로운 이름을 얻지도 않았다. 그에 관하여 기록된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유대인이었다. (본문 p189-190)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도 머리가 한대 맞은 듯한 느낌의 내용이었습니다. 아브람과 아브라함에 익숙해져서일까요? ^^ 아브라함처럼 새로운 이름을 받았거나 아니면 개심을 한 결의를 담아 이름을 바꾼 것으로 생각해 왔던것 같습니다.

 

바울은 많은 구약성경에서 이미 선포된대로 하나님의 복음을 이방으로 전하는 제사장의 임무를 맡아 행하는 순수한 유대인이었다는 것을 저자는 분명히 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그럴  있었던 이유를 신비라는 키워드를 통해 설명합니다.

 

- 바울은 신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히브리 성경에 들어있는 진리이며 이제 메시아께서 오셔서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그들의 정체성과 특수성을 잃지 않고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중략)..

 

내가 말하기를 메시아께서 유대 백성의 종이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들을 이루심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이려는 것이며,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함으로 그분의 자비를 보이려는 것이다.

이는 타나크에 이로 인하여 내가 이방 중에서 주를 인정하고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시 18:49인용) 기록된 것과 같다.

 말하기를 모든 이방인들아 아도나이() 찬양하라! 모든 백성이 그를 찬양하게 하라!”( 117:1인용)하였으며,  예샤야후(이사야)가 말하기를 이새의 뿌리  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는 이가 나올 것이요, 입 아이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다. – 로마서 15:8-12, CJB성경 (본문p191-192)

 

많은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은 성경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줄줄 외우기까지 하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눈이 있어도 이것을 보지 못했고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빼어나고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울/바울이라는 이름의  천재 유대인은 자신과 자신의 민족이 무엇때문에 먼저 선택을 받았고, 무엇을 해야하는지(온 세상 민족을 향한 제사장적 직무)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부르심과 그의 헌신으로 인해 우리도  빛을   있게 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 바울은 당시로선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예수를 믿게  유대인은 이방인이  필요가 없으며, 예수님을 믿게  이방인은 유대인이  필요가 없다는  예수님을 통한 복음 앞에서는 유대인도 이방인도 없고, 할례와 율법이으로 차별받지 않고 은혜로 구원받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삶을 통해 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과 유대인의 민족성에 대한 부분 만큼이나 민감한 이슈인 율법에 대해서도 마치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탁월한 식견을 보여줍니다.

 

- 서로를 사랑하는 끊임없는  외에는 아무 빚도 남기지 말라. 이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외에 어떤 계명들이 있더라도  계명들은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계명으로 요약된다.

사랑은  이웃을 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을 이루는 것이다. – 로마서 13:8-10(본문 p196)

 

앞서 안식일에 대한 예수님의 탁월한 식견을 기억하시나요? 바리새인들이 세부적인 하나하나의 상황에 대해 규례를 정하고 지켰냐 못지켰냐를 논쟁할  예수님께선 안식일을  하나님께서 만드셨고, 누가 안식일의 주인인지를 분명히 하심으로  모든 논쟁을 종식 시키셨지요.

 

바울 또한  탁월한 식견을 통해 소극적인 신앙(~하지 말라)에서 적극적인 신앙(~하라!)로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오해를 단번에 종식시켰습니다.

 

이처럼 예수님도 그리고  복음을 이방에 전한 바울도 모두 진정한 유대인(코셔)였지만 안타깝게도 로마 국교화를 통해 점차 타락하던 이방인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을 거의다 몰아내고 점차 율법에 맞지 않는(언코셔) 모습으로 변질되어 갑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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