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집사 어디가~ 시즌2

[시즌2 #22] 본래 의미와 다르게 쓰이는 성경 구절들 #2

by 현명소명아빠 2020. 5. 11.

김집사는 몇 년간을 꾸준히 이어 오다가 작년에 달성하지 못한 1년 성경 1독을 올해는 꼭 하리라 다짐 중입니다. 단지 나 1 독했어!!라는 트로피를 원한 건 아니고요. 하나님을 알기 위해 책을 읽으면서 성경을 등한시한다는 것은 무언가 선후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욥기가 끝나고 원래는 시편에 들어가야 하지만, 웬지 예레미야를 읽고 싶어 방향을 살짝 틀어 예레미야를 시작합니다.

 

예레미야가 나이가 많이 어린 선지자였다는 것, 그리고 눈물의 선지자라 불리고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던 김집사에게 매일 10장씩 문맥을 끊지 않고 읽어 나가는 것은 예레미야서를 조금 더 연결된 의미로 알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예레미야 33장을 읽던 중 많이 낯익은 구절이 보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장 3절)

 

보통 신년 축복 성회등의 주제 말씀으로 많이 인용되는 말씀이고, 또한 기도원 등에서 통성기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많이 인용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앞에서부터 연결해서 읽어오던 김집사는 조금 다른 것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저 말씀을 주셨던 상황이죠. 

 

일단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에 '아직' 갇혀 있다고 33장 1절에 나옵니다. 그래서 언제부터 갇혀있었나 보니 32장 2절부터 시점과 이유가 나오는데요.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 와중에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에게 하나님께서 이 땅을 바벨론에 넘기셨고, 당신은 바벨론으로 끌려갈 겁니다 라고 예언을 하여 시드기야 왕에게 괘씸죄로 잡혀 간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숙부의 땅을 사도록 명하십니다. 나라가 멸망의 직전이고, 특히 예레미야는 나라가 망할 것을 예언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숙부의 땅을 사서 증서를 잘 보관하라고 하시니 참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예레미야도 사람인지라 하나님께 슬픔과 당황스러운 마음을 기도로 올려 드립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그리고 하나님께선 '회복'시키실 것임을 이야기 하십니다.

 

그리고 얼마인지는 정확히 않지만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의 뜰에 갇혀 있을 때 또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그리고 그때 서두에 선포해 주신 말씀이 바로 33장 3절 말씀입니다.

 

32장 말미에선 회복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김집사가 보기에도 뭔가 명확치 않고 두리뭉실한 느낌의 말씀만 하셨다면, 33장의 이 선포 이후에 2가지에 대해 명확히 이야기하십니다. 

 

김집사는 여기서 33장 3절을 이해하는 힌트를 얻었습니다.

 

당장 눈앞의 현실과 하나님의 요청은 상반되는 것처럼 보였고, 예레미야는 그것을 꾸미지 않고 슬픔과 당혹스러움을 담아 하나님께 기도 하였습니다. 아마도 슬픔의 부르짖음이지 않았을까요? 끊임없이 자기 나라의 멸망을 예언하여야 했던 어린 소년 선지자는 그 자체만으로 마음이 계속 무너졌을 텐데 거기에 더하여 자신이 이해하지 못할 요청만 하시는 것 같은 하나님께 그는 "이건 너무 앞뒤가 맞지 않잖아요?"라고 외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소년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선 나무라지 않으시고, 무례하다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더... 더... 너는 내게 부르짖으며 더 물어봐야 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짖음에... 질문에... 너의 의심에... 너의 당혹스러움에 내가 답을 해줄 거야. 그런데 그 답은 그냥 답이 아니라 나의 크고 비밀한 계획이야!"라고 말씀하시고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32장처럼 두리뭉실한 계획이 아니라 구체적인 하나님의 이스라엘 그리고 나아가 인류의 회복 계획을 말씀해 주십니다. 포로들이 돌아와 지난날처럼 되게 할 것이고, 더 나아가 다윗으로부터의 한 공의로운 가지, 모든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고 회복시키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알게 하십니다.

 

단순히 이 말씀만 쏙 빼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지만 들으신다' 라던가 '너의 마음의 소원을 부르짖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무조건 들어주신다'라는 자칫 기복주의로 흐르기 쉬운 인용은 위험합니다.

 

오히려 나의 현실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눈을 가리고, 현실로 인해 마음이 무너져 있는 이들에게 소망의 회복을 주시는 말씀,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께선 일하고 계시고 회복시키실 것임을 알려주는 말씀으로 인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김집사는 가져 봅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