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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뒷조사 / 김민석 / 새물결플러스 #2

by 현명소명아빠 2019. 12. 20.

Main category: 신앙도서 - 하나님을 알자!

  • Subcategory: 이런 건 만화책이지~
  • 추천 대상:
    • 복음서 중 가장 마지막에 쓰인 요한복음의 역사성에 대한 관심이 있는 분
    • 요한복음에 비춰 현대 시대의 교회의 모습에 대한 새로운 기준점을 가지고 싶은 분

#2에서는 chapter12 요한 공동체와 성육신의 의미부터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1에서도 간단히 다뤘었지만, 요한복음에서는 다른 복음서와 비교하였을 때 의도적으로 사도, 열두 제자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사도로서 상당한 권위를 인정받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에 대한 언급을 생략하였다는 것은 그것 나름의 의도성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왕이신 예수님과 보혜사 성령님에게 모든 권위가 집중되고, 그 외 모든 이들은 직분이나 역할 지위로 구분 짓지 않고 "제자"로서의 개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것에 대해 본문에서는 브라운이란 신학자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지속적으로 제자들을 강조(78회)함으로써 자신의 관심이 한 계층의 사람들을 다른 계층의 사람들 위에 두는 역할(혹은 지위)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관계와 그로부터 받은 생명에 있음을 보여준다. (본문 p244)

 


이토록 하나님의 권위 앞에서 평등한 제자로서의 공동체였던 그 이상적인 요한 공동체도 내부 논쟁과 분열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 요한 1서에 나옵니다. (요일 2:19) 그 기본적인 차이는 바로 해석의 차이인데, 첫 번째 해석의 차이를 보인 부분은 "예수의 성육신"입니다. 요한 이서 1:7에서는 그 분리된 그룹이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온 것을 부인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신적인 존재가 주는 영원한 생명에만 집중된 나머지 인간 예수의 삶과 죽음을 점차 부인하던 그들은 윤리적인 측면에서도 그 차이가 나타납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요일 1:6에서는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면서 어둠 속에 거하면 거짓이라고 적고 있고, 하나님을 안다고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요일 2:4에서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며 거짓이며, 빛 가운데 산다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도 요일 2:9에서 빛가운데 산다면서 서로 사랑하지 않는 다면 거짓이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책은 하나님의 교회라 하지만 그 안에 정의로움도, 말씀대로의 삶도, 서로를 긍휼히 여기도 돕는 사랑도 없는 현대 교회의 모습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전 이런 기준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도덕적인 잣대로 교회를 판단하는 것이 아닌, 말씀을 기준으로 우리를 비추어 잘못된 것을 확인하고 고치는 것이야말로 현대 교회에서 회복되어야 할 모습 중 하나가 아닐까요?


이런 차이는 1) 인간 예수로서의 의미를 퇴색시켰고, 2) 신자의 윤리적 행동에도 영향을 끼쳤으며, 3) 요한복음의 핵심 주제인 '영광'에 대한 이해도 달리 하게 만들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도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의아했던 부분이 나오는데요. 바로 그 '영광'의 의미가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장면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광하면 부활하시고 승리하신 예수님, 승천하셔서 보좌 우편에 거하셔서 심판주로 오실 예수님의 모습을 쉽게 떠올립니다.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런데 이런 관점은 지극히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는 장면이고, 구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자신을 나타내려 하실 때 드러나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하나님은 떨기나무로, 구름에 가려진 광채 등 간접적으로 그리고 부분적으로 드러나고 있는데요. 그런 하나님의 영광이 요한복음에서는 당시 유대인의 인식을 기반으로 할 때 너무나 충격적인 방식으로 나타나게 되는데요. 바로 '눈으로 볼 수 있는 인간으로.. 예수로 드러난 것'입니다.

 

인간 예수를 본 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이며, 예수님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영광이 인간의 눈 앞에 보인 사건들이었던 것입니다. 

요 1:14, 18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한복음의 저자는 영광스러운 모습이어서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의 모습이 하나님의 영광임을 강조하기 위해,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도, 십자가 처형 사건에서 다른 공관복음에서 공통적으로 거론된 초자연적인 동반 현상에 대해서도 의도성을 가지고 적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한 가지 질문에 도달한다고 적고 있는데요. 바로 "예수의 고통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으로 드러나고 있으신가?"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어가던 예수님과 함께 아파하시고, 함께 고통당하시고, 전적으로 함께 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모습을 인간의 모든 고통의 순간 속에서 함께 고통당하시는 하나님을 또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절규 속에서 함께 우시는 하나님을 말이죠.

 

죄와 사망에 갇혀 삶 속의 온갖 고통과 상처를 겪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삶 전체를 새롭게 하시기 위해 자발적으로 고난 속으로 자신을 낮추신 분. 요한복음은 그 사랑 속에서 하나님의 진정한 영광을 보았다는 부분이 저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셨음에도 그 몸에 십자가 고난의 흔적을 그대로 가지고 계셨던 예수님. 우리는 그 고통의 흔적을 발견할 때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온전히 그분께서 이해하시고 같이 아파하신다는 것을 발견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 교회는 성도들의 아픔에 대해 그다지 관심 갖지 않는 것 같아 보입니다. 고통과 아픔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다지 위로의 존재로 여겨지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예수님을 더 발견하고 우리 삶에 비춰보아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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