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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집사 어디가~ 시즌2

[시즌2 #82] 집으로 돌아간자들, 울고 서있던 여인

by 현명소명아빠 2025. 7. 4.
김집사 어디가 시즌2 #82
집으로 돌아간자들, 울고 서있던 여인 

 

요한복음 20장 서두에선, 안식일 후 첫날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으로 갔다가 무덤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가서 이 일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으로 달려가 예수님의 시신을 싸는데 사용된 세마포가 놓인 것과, 머리를 쌌던 수건이 따로 놓여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그 다음의 그들의 행동은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9절)

 

아직 예수님의 승천도, 그리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시지도 않았기에, 그들은 말씀을 깨달을 수 없었고, 그렇기에 그저 '놀랍네' 하면서 집으로 돌아간 것이겠지요.

 

그런데 처음 이 사건을 목격하고 제자들에게 알렸던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있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녀 또한 두 제자와 같은 이유로 예수님의 부활을 알거나 믿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이라도 발라드리고 싶은데, 그 시신조차 보이지 않으니 슬피 울고만 있었던 것이죠.

 

그런 막달라 마리아에게 흰 옷 입은 두 천사와 예수님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녀는 예수님께서 명하신 대로 제자들에게 자신이 예수님을 보았고, 자신에게 말씀하셨음을 전합니다.


똑같이 빈 무덤을 보았고, 똑같이 성령을 받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은 '집으로 돌아 갔다'로 끝났고,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도대체 무슨 차이가 이렇게 다른 결말을 만들었을까요?

 

김집사는 그 이유를 '간절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노력이나 수고로 얻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간절함'이 아니라, 아무것도 스스로 이루지도, 깨닫지도 못하지만, 그것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올려드릴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싶어요. 그런데 말씀이 잘 깨달아지지도 않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기도 너무 어려워요. 도와주세요.'

 마치 이 기도처럼 말이죠. 막달라 마리아의 울음은 그녀의 간절한 기도였고, 예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신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 스스로 결심도, 결심을 실천할 의지도, 일을 성취하지도 못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간절한 마음을 올려 드릴 수는 있습니다. 

기도로 올려 드리십시오.

그럼 만나 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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