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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도서 - 하나님을 알자!/신앙도서.. 처음이신가요?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 / 필립 얀시 / 요단(IVP) #2

by 현명소명아빠 2020. 2. 16.
  • Main category: 신앙도서 - 하나님을 알자!
  • Subcategory:  신앙도서.. 처음이신가요?
  • 추천 대상:
    • 교회에 대해 아픔을 가지고 계신 분
    • 그 아픔으로 인해 교회를 떠났거나 고민하시는 성도님
    • 올바른 교회에 대한 바른 기준을 정하고 싶으신 성도님

이상적인 예배란 어떤 모습일까요? 훌륭한 찬양대의 장엄하고 은혜로운 찬양으로 묵도를 시작하고, 많은 성도들이 함께 한 목소리와 한 모습으로 드리는 찬양과 예배일까요? 일점의 예배에 대한 방해 없이 매끄러운 진행과 매 순서를 맡은 이들의 놀라운 능력들로 예배가 정말 무리 없이 잘 진행되는 것을 이야기할까요?

 

사실 저와 아내도 이전에 다니던 교회를 옮기기로 결정하고 새로운 교회를 찾아다니며 정말 많이 고민했던 화두였습니다.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못 볼 꼴도 보았고, 정말 이전에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모습도 보았고, 선명한 복음주의 설교도 들어보았으나, 정치색을 잔뜩 띄고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는 곳도 보았습니다.

 

보통 성도들은 저마다 다 이상적인 예배에 대한 분명한 혹은 막연한 기준을 다들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서두에 적은 그런 모습이 대부분이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짐작을 해봅니다. 그러나 그런 기준에서라면 2장에서 저자가 러셀 스트리트 교회에 대해 기술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이나 먼 것 같습니다. 

성도가 예배 중에 목사님을 향해 럭비공을 던지거나, 술집 여인이 강대상을 돌아다니며 소란을 피우거나 예배 시간 내내 끊임없이 불평과 비판만을 던지는 여인과 함께 드리는 예배라면 말이죠.

 

저자는 이런 다양한 양태를 보이는 러셀 스트리트 교회를 이야기하며 하나의 교회의 모습을 더 기술하는데 그 교회는 바로 고린도 교회입니다. 교회 분열과 근친상간이 여전히 난무하는 교회, 당시 문화로 유대인과 이방인이 뒤섞인 교회, 바울의 모든 서신서를 통틀어 가장 엄하고 강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는 바로 그 교회를 말이지요.

 

저자가 적고 있는 또 다른 교회의 모습도 한 번 살펴볼까요? 사무처도 유급 직원도 없는.. 그러나 매주 엄청난 수의 헌신적인 회원들을 불러들이는 이 교회는 '익명의 금주회'라는 이름으로 통한다고 합니다. 그곳의 월요일 밤 열두 시의 모습은 다 쓰러져가는 어떤 집의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이미 여섯 차례의 모임이 그곳에 있었고 실내는 담배연기로 눈을 뜨기 어려울 지경이었다고 저자는 회상합니다.

 

그곳에는 유명한 정치인과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부자들이 실업자들과 팔뚝에 주사자국이 선명한 건달 소년들과 함께 스스럼없이 섞여 있었다고 합니다.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자신의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가진 배경을 앞세우지 않고 같은 어려움을 갖고 있고 그것을 이겨나가려 애쓰는 곁에 있는 이들을 진심으로 격려하고 따뜻하게 응답해주고 같이 웃고 같이 우는 곳.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용서와 힘을 구하겠다'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모임. 저자가 괜히 초대교회와 닮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가끔 생각해 봅니다.

'우리 교회에 동성애자가, 술집 여인이, 마약중독자가, 전과자가 나와 함께 예배드린다고 할 때 나와 우리의 반응은 어떠할까?'

'우리는 그들에게 소외감이나 기시감을 느끼지 않게 하며 자비로운 하나님의 사랑을 그들에게 충분히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 없습니다. 

 

김집사가 아직 청년일 때 '옹기장이' 찬양집회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즈음으로 기억되는데요. 한참 집회가 진행되던 중 뒤에서 소란이 있었고 예배 진행은 멈추게 되었습니다. 한 중년 남자가 술병을 손에 들고 잔뜩 취한 목소리로 위선자들이라고 소란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때를 회상해보면 '뭐 저런 미친 XX'이라고 김집사도 속으로 되뇌었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의 말인즉슨 이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너희들이 그 사랑을 뭐 얼마나 삶 속에서 이웃에게 실천했냐고 하는 말이었지요. 그때는 사실 그 말이 별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김집사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래도 남들보단 착하게 살았지 않았나 했던 것 같습니다.

 

결론은 그 남자는 스탭 중 하나였고, 그 이벤트는 이곳에서 하나님 사랑을 노래하지만 세상에선 그렇게 살지 못하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그 집회의 메시지 중 하나였습니다.

 

교회는 죄인이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복음을 듣고 돌이키는 곳입니다.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자유케 되는 곳입니다. 즉 그런 모든 모습을 가진 이들이 와야만 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대한민국의 많은 교회는 그런 다양성을 배척합니다. 비슷한 생각과 비슷한 경제 수준과 비슷한 신앙관을 가진 이들의 집합체가 되어버리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그 교회가 복음주의적이냐 아니냐 하곤 다른 문제로 보입니다. 충분히 복음주의적인 메시지를 강단에서 전하는 교회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교회가 가져야 할 다양성에 대해 저자가 인용한 글이 있어 적어봅니다.

 

교회는 단순히 화해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기만 하는 장소는 아니다. 신문사나 전화국은 소식을 받아 전해 주는 곳이지만 교회는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교회는 단순히 그 말씀 때문에 몰려드는 장소는 아니다. 동창회는 학교 때문에 모이고, 극장의 관객은 영화의 명성 때문에 몰려들지만 교회는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세상의 갑남을녀가 모여 전혀 새로운 사회적 완전체를 이루는 곳,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일이며 역사에 의미를 세우는 일이다. (본문 p88 / 존 하워드 요더 말 인용)

 

운전면허 시험장, 전철역 등의 장소에 가게 되면 내가 일상으로 흔히 만나는 이들만을 보게 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세상에 정말 다양한 이들이 나와 다른 모습과 다른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구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모든 이들이 환영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느끼고 기뻐할 수 있는 곳! 한없이 크고도 한없이 작은 곳! 그토록 크기에 겸손한 자들이 와서 높임을 받는 곳이자 그토록 작기에 높은 자들이 낮고 낮아져야 들어올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교회임을 저자는 강한 어조로 적고 있습니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그런 모습입니까? 아니, 나 자신이 그런 교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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