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집사 어디가 시즌2 #42
'공평'의 문제.. 기독교에서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현대 사회 특히 젊은 세대에서는 '공평'의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젊은 세대에서 강조되는 특성에서 전 세대를 아우르는 화두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공평'의 문제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안그래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사회적 이슈를 활활 불태우고 있는 '대면 예배 vs 비대면 예배'의 불씨를 다시 지피기 위한 글은 아닙니다. 그런 글을 기대하셨다면 언론사 정치 사회면으로 가시면 됩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런 이슈를 향한 '성경의 시선'은 어떠한지를 함께 살펴보려 하기 때문입니다.
2021년 1월 21일 자 BBC뉴스기사(https://www.bbc.com/korean/news-55629629)를 근거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불합리'의 이유를 찾아보겠습니다. (그나마 최대한 공정성을 지킬 수 있는 해외 언론 매체를 근거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불합리 이유를 찾기 전에 그동안의 교회와 연관된 코로나 19 관련 사건들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다시 한 번 적어보지만, 이 글의 목적은 논쟁의 촉발이 아니며, 기독교 옹호도 아닌, 서로가 이야기하는 주장에 대해서 들어보고, 성경의 입장에서 그 주장들이 어떻게 읽힐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교회와 연관된 코로나19 관련 사건]
(정확하게 옮기기 보단 기사를 축소/요약하여 적고 있습니다)
1. 작년 6월, 8월 2차례에 걸쳐 수도권 개척교회 일대에서 일어난 집단 감염 사건
2. 그 이후로 관악구 왕성교회, 광주 일곡중앙교회, 용인 우리제일교회,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등 수차례 교회 중심 집단 감연 발생
3. 성북구 사랑제일교회의 경우 1000명이 넘는 확진가 기록하며, 신천지 발 대유행에 이은 국내 2차 대유행으로 불리기도 함
4. 작년 12월부터 종교시설에 대한 방역수칙 강화하며 일부 교회가 반발하며 마찰 발생
5. 부산 강서구 세계로 교회는 수차례 경찰 고발에도 대면 예배 강행하다 예배당 무기한 폐쇄 조치 받음
6. 부산 서구 장로교회, 진주, 용인, 서울 등 여러 교회에서 대면 예배 강행하다가 집합 금지, 과태료, 운영 중지 처분 받음
7. 12월 6일 개신교 관련 전국 497개 교회는 정부의 '대면 예배 금지' 방역 조치가 권한 남용에 해당한다며 행정소송
그리고 BBC뉴스 기사 이후 발생한 인터콥 발 코로나 19 발생 및 IM/TCS국제학교 발 코로나 19 발생도 있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개신교측에서 '대면 예배'를 고수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적고 있습니다.
[개신교에서 대면 예배를 고수하는 이유]
(정확하게 옮기기 보단 기사를 축소/요약하여 적고 있습니다)
1. 비대면 예배의 한계(서부장로교회 이탁원 목사)
- 비대면 예배를 진행해보니 젊은층은 집에서 잘하지만, 연세가 드신 분들의 예배가 힘들었다.
- 어르신들은 기술을 잘 다루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집적 와서 예배드리는 방식에만 익숙해져 계시기 때문에, 비대면으로 진행한다고 했을 때 예배를 안 드리시게 되더라. 그런 부분이 안타까워서 대면 예배를 진행했다.
- 정부가 지역별/교회별/확진자 발생 여부 등으로 시설을 세분화시켜서 방역 조치를 진행한다면 좋을 것 같다.
2. 종교의 자유 침해(예수비전성결교회 최성동 목사)
- 어릴 적부터 신앙생활을 해왔는데, 예배를 자유롭게 드릴 수 없다는 사실이 충격이고, 정부에서 규제한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 정부의 규제를 용인하는 일이 곧 종교의 자유에 대한 침해가 될 수 있다.
- 방역 당국을 비롯한 대부분 이들은 좋은 마음으로 규제하는 것이겠지만, 일부가 이를 악용할 수 있다.
- '교회 발 감염'이란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 다만, 교리적으로 비대면 예배가 대면 예배를 대체할 수 있냐는 질문에는 "그렇다"로 답변.
- 성경의 가르 침상 예배 장소가 중요한 것은 아니며, 실제 한국 대다수 교회가 이 사실에 기인해 온라인 예배를 용인하고 있음
- 교회의 반대는 '비대면 예배'라기 보단 '정부의 강제' / 위험을 감수하는 판단의 주체가 교회가 되어야 함
3. 공포스러운 법(부산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
- 방역법을 어겼다고 확진자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무기한 폐쇄는 공포스러운 법
- 서울 지하철은 하루에만 730만 명이 타고 다니는데, 1만 명 들어가는 예배당도 20명, 5000명 들어가는 예배당도 20명이라면서 (기준이)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고 주장
현재 적용되는(1월 16일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비수도권의 2단계 조치 연장에 따라 종교시설과 종교활동에 대한 방역지침) 종교시설 방역지침은 위의 주장이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 형태로 발표되었습니다.
정규 예배·법회·미사 등 위험도가 낮은 종교활동은 마스크 착용, 거리두기 등 방역 수칙 준수 하에 수도권 10%, 비수도권 20%(좌석 기준)까지 대면 진행이 허용된다. 그리고 부흥회, 성경공부 모임, 구역예배, 심방 등 모든 모임·식사는 금지 출처 : 코리아드림뉴스(http://www.kdntv.kr
그러나 아직도 대외적으로 표출이 되었던, 내면적으로 쌓여있던.. 교회 내 불만은 온전히 해소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공평'의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임을 보게 됩니다.
사실 근래 들어 김집사는 배달 음식 외에 식당에서 외식을 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되었지만, 길을 걸어가면서 일부 음식점이나 카페 내에서의 모습을 보면 경악할만한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제대로 된 환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작은 가게 안에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이들이 칸막이와 같은 최소한의 장치 없이 밀집된 인원들이 웃고 떠들며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 솔직히 "저런 건 안 잡고 왜 방역 지침 잘 지키는 교회만 잡는 거니?"란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성도들이 그런 모습을 보며 교회만 차별받는다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억울함은 교회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의 예로, 많은 자영업자들이 경제적 손실과 어려움을 겪고 있고, 많은 아이들이 2020년 내내 학교에 제대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들을 돌보는 부모의 삶에도 고스란히 그 영향력이 전가됩니다. 그리고 그 자영업자들과 아이들과 부모님들 중에는 기독교인이 없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들은 교회로 인해 이 어려움의 시간이 길어진다고 생각한다면, 과연 교회에 대한 억울함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요? 성도가 교회에 억울함을 가지게 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요?
교회는 정부와 대립하기 전에 그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바로 내 교회 성도들이라는 인식을 먼저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교회의 여러 주장들은 타당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분쟁의 대상이었어야 했느냐는 질문에는 의문입니다. 성도와 시민은 나눠져 있지 않습니다.
교회가 대면 예배를 금지하는 법이 악용될 것을 염려한다면, 더 많은 여론이 교회 편에 서게 하기 위해서라도 교회는 지금과 같은 모습을 취해서는 안됩니다. 민주국가에서 다수 여론이 곧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감안한다면 지금의 교회가 가는 방향은 분명 재고해 보아야 하는 부분입니다.
비대면 예배가 노년의 성도들에게 어려운 것이 분명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더 앞장서서 그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대형 교회에서는 예배를 더 많이 늘려서 각 시간대별 예배의 인원을 적게 하더라도 성도들을 수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로 대면 예배가 그토록 소중하다면 말이죠. 그리고 지역의 작은 교회와 연계하여 그곳에서 예배를 분산해서 드릴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지요. 이런 내용보다 더 좋은 방법은 분명 있을 겁니다. 최근 서점과 도서관에서는 가장 발에 차이는 도서의 주제가 '포스트 코로나 19'입니다. 코로나 19로 사회에 닥칠 여러 변화들을 예상해 보고 발 빠르게 대처하기 위함입니다. 이번 코로나19가 과연 마지막이란 보장이 있을까요? 앞으로 제2의, 제3의 코로나19가 닥쳐도 지금의 모습 그대로 있는 것이 정답일까요? 진리는 변하지 않지만, 그것에 대한 유연성은 필요합니다. 세상 모두가 변화를 준비하는데, 교회만 가만히 앉아 있다면... 그것은 게으른 핑계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공평'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마태복음 5:41)
당시 로마의 속국이었던 이스라엘에서는 로마군이 이스라엘 시민을 차출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그 법에 의해서 억지로 5리를 가게 된다면 그 사람 즉 로마군과 10리를 동행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이 상황을 야기한 이는 같은 동포도 아니고 이스라엘을 무력으로 강점하고 있는 로마군입니다. 그리고 점령국의 일방적인 강요로 일어나는 이 사건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상식적'이지도, '공평'하지도 않아 보입니다. 항거해야 상식적인 것이고 공평한 것이겠지요? 비단 이말씀만이 아닌, 예수님의 산상수훈 대부분의 가르침은 상식과 공평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보입니다.
성도는 상식적으로 분명히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선 그렇게 사고할 수 있는 자유와 지능을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가 하듯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일일이 묻고 나서 움직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과 우리의 상식이 부딪쳤을 때엔 우리가 멈춰야 한다고 믿습니다.
말씀에서 말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공평'을 이야기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장 말미에서 앞서 가르치셨던 산상수훈과 그에 이은 가르침의 요약이 나옵니다. 바로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닮아가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복음 5:48)
하나님께선 그 과정 가운데서 너희가 공평한 대우를 받을 거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복음을 받은 자,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닮아가는 성도는 오히려 환란과 핍박을 받을 거라고 하십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빌립보서 1:27-30)
성경의 가르침은 알면 알수록 공평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오히려 불공평의 대상이 될 거라고, 그리고 그것은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이유이기도 하다고까지 말씀하십니다.
한국 교회가 지금 겪고 있는 것이 정말 '환란'인지 아닌지는 각자마다 생각이 분명 다를 것입니다. 다만, 신기한 것은 어떤 결론이든지 간에 성도의 나아갈 방향은 크게 차이가 없다는 점입니다.
'환란'이라면, 당연히 성도가 받아야 할 것일 겁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말이죠.
'환란'이 아니라면, 방역지침에 최대한 협조하고 그 안에서 비대면 예배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이들을 위한 방안을 찾고, 이웃 사랑의 모습을 더 보이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결론이든, 우리가 온유함을 잃을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사람도, 여당/야당도, 정부도 아닙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에베소서 6:11-13)
우리의 분열을 가장 기뻐하는 대상은 공중 권세 잡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의 권면에 따라 분별하고 우리의 말을 더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면 그 목적이 아무리 정당해 보여도 우리 안에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이 가득하고 그것을 말로 토해낸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골로새서 3:8)
우리의 옳고 그름의 기준은 누구/무엇 입니까?
그리고 우리는 성경의 기준대로 말하고/생각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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