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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도서 - 하나님을 알자!/주일학교교사라면 필독!!

복음을 들고 너에게 갈게 / 배준영 / 생명의 말씀사

by 현명소명아빠 2024. 9. 7.

복음을 들고 너에게 갈게 -
처음 만나는 복음, 다시 누리는 복음
배준영 글,그림 / 생명의 말씀사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3561983

 

복음을 들고 너에게 갈게 | - 교보문고

복음을 들고 너에게 갈게 | 복음이 아직 낯선 이들을 1차 독자로 상정하면서도, 교회 안에 오래 머물며 그 문화를 누려왔으나 복음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하고 설명할 언어가 없던 많은 성도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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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가족 자녀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것은 늘 고민이 됩니다. 제가 어렸을 때보다 지금 세대가 더 활자와 친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그런 세대에게 활자와 더 멀어지게 만드는 일을 제가 굳이 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도 이유입니다.

 

그러던 중 이 책을 보게 되었는데, 추천글에 '존 스토트의 기독교의 기본 진리가 한 시대를 이끌었다면 이 책은 앞으로의 시대에 기독교의 기본 진리가 될 만한 책이다!'라고 적힌 것을 보고 급 흥미가 생겼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의 기독교의 기본 진리는 말 그대로 신앙과 교리적으로 탄탄한 기초를 쌓게 한 귀한 책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선물하기 전 이 책을 읽어보면서 그 추천사가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체와 접근 방식이 지금 청소년, 청년 세대에 더 적합하게 되어 있음 또한 발견하게 되어, 기쁘게 선물할 수 있었습니다.

 

청소년, 청년만이 아닙니다. 사실, 신앙의 기본서라 할 수 있는 책들이 참 많지만, 자칫 그 딱딱한 문체로 인해 시도조차 못하고 포기할 수 있는 위험성(?)도 있는 듯 하거든요. 이 책은 초심자 성도분들이 교리적으로 기초를 탄탄히 하는데도 매우 유익한 책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도 이와 같아요. 하나님 편에서 자기에 대해 말씀해 주실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답니다. 이 것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유일한 길(way) '이해로'입니다.
하나님이 굳이 사람을 찾아오셔서 구구절절 말씀하시겠냐고요? 예,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알려 주기를 너무나 좋아하는 'TMI 스타일'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찾아와 알려 주시는 것을 가리켜 '계시'라고 부릅니다. (p43)

그런데 왜 하필 그 선을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는 것으로 그으신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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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기록된 원래 언어를 직역해 보면, 이 나무의 이름은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 열매'입니다. 이 나무는 선과 악의 지식이 어디에서부터 오는지를 가리키는 사인인 겁니다. 그 사인은 바로 하나님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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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창조하신 대상을 보며 말씀하셨던 "좋았더라"가 바로 '토브'입니다. 그러면 선과 악을 정하는 기준은 누구에게 있나요? 맞아요, 모든 것을 창조한 주인이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이 나무는 바로 '창조하셔서 주인이시기에 선과 악의 기준이 되시는 하나님'을 떠오르게 하는 나무였다는 겁니다.
이 명령을 깨고 '선과 악의 지식'을 먹는다는 건 "나는 이제 당신을 왕으로 인정 못 합니다. 앞으론 내가 선과 악을 결정하는 왕이 될테니까!"라고 의지를 표명하는 겁니다. (p83-84)


모든 단서를 종합해 파악한 죄의 본질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왕 되심을 거부하고 스스로 왕이 되어 마음대로 하려는 태도'였어요.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왕이시기에 마땅히 '하나님 중심성'으로 살아야 하는데 '자기 중심성'으로 살려는 마음의 태도!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죄의 본질입니다. (p85)


죄인 역시 이와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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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드러나는 죄 된 행동이 없더라도 그 역시 죄인이라는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아요.
그들 역시 자기 중심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바로 '원죄'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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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를 '최초의 죄 된 행동' 곧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라고 알고 있거든요 엄밀히 말해서 원죄는 그런게 아니랍니다.
원죄는 '마음에 자기 중심성이 자리 잡은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p88)


성경은 예수님을 그렇게 소개하지 않아요. 오로지 "예수님은 100% 하나님이신 동시에 100% 사람이시다"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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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람의 머리로 도저히 이해가 안 되지만 사실인 것을 신비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이성으로는 다 알 수 없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예수님=사람'이라고 증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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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이와 같은 존재이신 까닭은 그분의 목적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밝히신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대속물'이 되는 것이었어요. (p121)


그런데 한 번, 딱 한 번 예수님이 엄청난 고통에 절규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어요. 성경이 이 장면을 보여 주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죠? 우린 그 의미를 발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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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비명을 지르셨어요. 무엇이 잠잠하던 예수님의 비명을 토해내게 했나요? 육신의 고통? 아닙니다. 이것은 영의 고통이었어요.
하나님이 예수님과의 관계를 끊으셨어요. 말 그대로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버리신 겁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죽음이라고 하면, 십자가에 달리신 육신의 죽음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죄의 형벌인 '죽음'은 육신의 죽음뿐만 아니라 영의 죽음이 있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나요? 지금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가 단절되는 영의 죽음을 목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끊어짐이 얼마나 고통스러우셨는지 그 끔찍한 십자가형에도 침묵하시던 예수님이 큰소리로 비명을 지르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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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죄값을 지불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예수님을 버리셨어요. 하나님과의 단절은 원래 우리가 당한, 우리가 당해야 할 영의 죽음이자 관계의 죽음이었어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육신 뿐만 아니라 영의 죽음까지도 다 대신 지불하신 것입니다. (p13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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